Nothing, But 이명호 작가 전시 리뷰
Nothing, But 이명호 작가 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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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0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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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5. 수 – 2019. 1. 6. 일 |
] 갤러리현대

Nothing, But 이명호 작가 전시 리뷰

이명호, 〈Nothing, But #2〉, 2018
이명호, 〈Nothing, But #2〉, 2018

 

잿빛 하늘 아래 꿈처럼 억새밭이 펼쳐진다. 그 앞은 먹먹한 갯벌이다. 문득 하얀 캔버스가 서 있다. 이 캔버스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답을 원하는가? 캔버스 천 뒤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이명호 작가는 <Tree>(2006/print in 2007) 시리즈로 데뷔했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사진계에서 반향도 컸다. 갤러리 현대에서는 201812월 이명호 작가의 개인전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Nothing, But>를 개최했다.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스투르스의 전시(2010~2011) 이후에 갤러리 현대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사진 개인전이었다. 그만큼 국내 미술계가 사진작가와 작업을 저평가하는 가운데 이명호 작가의 저력을 동시에 반증하는 전시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명호 작가는 이 전시에서 프랑스 생떼미리옹 샤토 라호크(Chateau Laroque) 와이너리의 홍보대사로 선정되며 진행한 작업도 함께 선보였다. 하얀 캔버스 천을 와인으로 염색한 이 작품은 2016년 샤토 라호크 와인의 라벨로 쓰였다.

이명호 작가의 작업은 피사체에 따라 제목을 붙이는 원칙을 따른다. <Tree> 작업에는 나무들이 등장한다. 벌판 위에 예의 흰 캔버스가 우뚝 서 있다. 캔버스 안에는 나무가 존재한다. 이 때 나무는 자연물일까, 오브제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는 프린트나 회화가 아닌, 벌판에 뿌리 내리고 있는 실제 나무이다. 작가는 나무 뒤에 대형 천을 설치하는 간단한 트릭을 통해 사진과 현실을 교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며, ‘사진과 재현이라는 매우 원초적인 사진 담론을 생산했다. 관객들은 그의 사진을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 ...’ 하며 당혹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런 사유와 담론보다는 시적이고 은유적인 이미지와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진은 꿈같은 현실이며, 현실이 될 수 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꿈이다.

이번 개인전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Nothing, But>은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테마로 분류한다면 나무/신기루(사막)/nothing, but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예술의 본질을 환기하는 방식, 즉 예술의 역할을 작가가 임의의 법칙에 의해 세 가지로 나누어본 것이다. 그것은 다시 현실을 드러내는 것 / 비현실을 만드는 것 / 앞의 두 가지를 포함하고 그 너머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Tree> 시리즈는 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현실의 나무를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는 방식은 결국 사진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반면 <Mirage> 시리즈는 사진을 통해 비현실을 창조한다. 막막한 사막에 설치된 길고 긴 광목천을 원경에서 촬영하면, 흰 천이 마치 오아시스나 바다처럼 보인다. 예술의 또 다른 기능, ‘다른 현실(신기루)’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Nothing, But> 시리즈는 현실과 비현실 너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두 시리즈 이후의 예술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얀 캔버스가 깨끗이 관객을 마주한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투명하다. 캔버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nothing), 사실은 작가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미지를 계속해서 촬영한 결과물이다.(과다노출 효과를 주면 이미지는 사라지게 된다) 이미지를 채집하고 포착하려는 작가의 욕망이 쌓이고 나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망함과 멍멍함이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반면 대상들을 지운 여백이 더 많은 현상을 포괄하는 현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nothing’이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는 ‘anything’이 될 수 있는, 현실과 비현실이 혼합되어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런 담론과 사유에 앞서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미지의 세계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이명호의 사진을 곰곰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세계로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예술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요한 해변과 갯벌에 그림처럼 놓인 캔버스의 뒤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저 문을 열면 다른 우주가 펼쳐지지는 않을까? 작가가 열어 놓은 저 미지의 세계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캔버스 뒤에 있는 미지의 세계가 성큼성큼 걸어와 주기를, 조용히 기다리게 되는 힘이 있다.

글쓴이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다. 미술전문지 에디터와 2018 강원국제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했고, 현재 현대미술 전문 출판사 아트북프레스의 대표이다. 저서로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2015)<서울 인디 예술 공간>(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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