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열쇠 박정기 개인전
창작의 열쇠 박정기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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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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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 창작의 열쇠 박정기 개인전
전시작품 : 설치작품 2점, 영상작품 2점, 드로잉 5점
전시기획 : 독립큐레이터 류병학
전시장소 : 2ND AVENUE gallery 서울시 중구 필동 128-22
Tel : 02) 593-1140
전시기간 : 2019. 06. 14 - 07. 14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의 박정기 개인전 <<창작의 열쇠>>는 신작들 4점과 드로잉 5점을 전시한다. 그의 신작 4점은 <경작본능> <창작의 열쇠> <가까운 먼 II> <화염산도>이다. 박정기는 신작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화 이후 노동이란 일 안에서 자율적 표현 본능의 통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경작본능>,<창작의 열쇠>는 통제와 규제를 뚫고 시도되는 도시 속 불법 경작 행위와 실제 교도소 공간에서 수감자들의 자율적 자기표현에 주목한다. <가까운 먼 II><화염산도>는 급속한 사회 변화로 인해 우리의 무의식에 잠재된 낡은 통념과 새롭고 낮선 시스템의 충돌로 생기는 가치혼란과 개인의 소외를 다룬다.”

가까운 먼 II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 1층 전시장에는 박정기의 <가까운 먼 II><화염산도>가 전시되어 있다. 가까운 먼 II? 그렇다! 그것은 작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박정기 개인전에 출품된 <가까운 먼>2탄인 셈이다. 그것은 2점의 벽면-조각을 서로 마주보게 설치되어 있다. 하나는 붉은 십자형의 조각에 군인들의 손들을 제작한 것이다. 4개의 손들은 마치 경례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 군인의 4개 손은 십자형의 조각에 장착된 모터로 인해 서서히 시계방향으로 돌도록 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맞은편 벽면에 일자형의 조각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사진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그것 역시 일자형 조각에 장착된 모터로 인해 시계방향으로 서서히 돌고 있다. 십자형의 조각에 설치된 경례하는 군인의 손들과 일자형의 조각에 설치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사진은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지만, 서로 마주보는 벽면에 설치된 까닭에 그들은 서로 거꾸로 돌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박정기의 <가까운 먼 II>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냉전 이대올로기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무의식속에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민주화되고 개인의 권리도 존중되어지는 것 같지만 의식내부와 일상의 곳곳에서는 전체주의적인 태도와 의식이 우리의 생활을 간섭하고 통제 한다. <가까운 먼 II>은 이러한 전체주의적 통념이 어떤 형태로 삶에 관여해 왔는지, 그리고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에서 남과 북이 전체주의적 이념을 어떤 모습으로 공생하여 왔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화염산도

박정기의 <화염산도>(화염산(火焰山)은 고창고성 뒤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으로 약 100에 걸쳐 길게 이어진다. 이 산의 특징은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햇빛을 받으면 반사하여 마치 불길이 치솟는 듯한 모양이어서 화염산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화염산 [火焰山]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는 기다란 테이블 위에 지그재그식의 8폭 병풍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8폭 병풍에는 총 17개의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 스피커들에서 어떤 말들이 흘러나온다. 그 말들은 뉴스나 나레이션 형식으로 재생된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말들을 귀담아 들어보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연쇄살인 사건들에 대한 범인의 진술내용과 공판조서 그리고 난지도 변화과정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쇄살인 사건들과 난지도? 도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여러분도 어시다시피 연쇄살인(serial murder)’은 연속적으로 살인 행위를 저지르는 범죄를 뜻한다. 연쇄살인범은 흔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획적으로 살인 범행을 저지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연쇄살인 사건은 한 마디로 차곡차곡 쌓인 살인 사건을 뜻한다.

난지도(蘭芝島)는 난초(蘭草)와 지초(芝草)를 아우르는 섬, 즉 지극히 아름다운 섬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섬은 1977년 한강 변에 제방을 쌓고 쓰레기 매립장으로 바뀌었다. 15년간 무려 9,200만 톤의 쓰레기가 쌓여 높이 90m에 달하는 거대한 두 개의 산으로 변모하였다. 1993년 난지도 매립지 폐쇄 이후 서울특별시는 난지도와 주변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현재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 바로 난지도 매립지에 해당한다. 물론 지금의 난지도는 육지와 연결되어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이제 박정기가 연쇄살인 사건과 난지도를 접목시켰는지 감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연쇄살인 사건과 난지도를 접목한 작품을 <화염산도(火焰山圖)>로 작명했다. 화염산? 문득 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불타는 산(후오이엔산)이 떠오른다.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불경을 얻으러 가던 중 가을철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도한 곳이 다름아닌 사방 800리에 걸쳐 있는 거대한 화염산이었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파초선(芭蕉扇)이라는 부채를 빌리기 위해 파초동에 있는 나찰녀를 찾아갔다. 손오공은 우여곡절 끝에 파초선을 얻었다. 손오공은 화염산을 향해 파초선을 49번 흔들어대니 무섭던 불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박정기의 <화염산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급속도로 빠른 경제성장과 사회적 가치의 혼란으로 발생하는 병리현상을 지질학적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고 답변했다. 말하자면 그는 연쇄살인 사건과 쓰레기 매립장인 난지도를 대한민국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보았다고 말이다. 왜 우리 사회는 불타고 있는 것일까?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이 아닐까?

경작본능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 2층 전시장에는 박정기의 영상작품 <경작본능><창작의 열쇠>가 상영되고 있다. 그의 <경작본능>은 아파트 단지 주변의 땅이나 도로의 짜투리 땅, 하천의 콘크리트로 쌓은 제방, 공원의 한 가운데뿐만 아니라 경작금지푯말이 버젓이 세워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단경작을 해놓은 모습을 촬영한 영상작품이다. 작가는 <경작본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짧은 기간 산업화를 거쳐 신자유주의와 4차 산업시대에 살고 있지만 뜻밖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곳곳에서 마주친다. 서울 근교에서는 아파트 단지주변 구청에서에서 설치한 경작금지라는 경고표지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파트 주변 자투리땅을 경작하는 어르신을 목격된다. <경작본능>은 구시대적 유산으로 보이는 불법경작 행위를 추적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적 통념과 관념이 같은 시기에 존재하면서 충돌하는 모습을 노동과 자기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본다.”

박정기가 촬영한 곳들에 경작하시는 분들은 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란다. 왜 그들은 경작금지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작을 하는 것일까? 작가는 그들의 경작본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경작한 농산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게릴라 경작은 경작하지 않고서는 다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작본능앞에 있다.

창작의 열쇠

박정기의 <경작본능>이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상영된 영상작품인 반면, 그의 <창작의 열쇠>는 검은 방에서 빔프로젝트로 상영되는 영상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창작의 열쇠>영상작품이지만, 영상은 검게 처리되어 있고 단지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작가는 검은 화면 아래에 출연진의 목소리를 자막 처리해 놓았다. <창작의 열쇠>는 작가가 어느 교도소 관계자와 인터뷰한 것이다. 일단 작가와 교도소 관계자와의 인터뷰 부분을 이곳에 인용해 놓겠다.

제가 원래 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은... 교도소에서 누가 밥풀을 식당에 갈 때마다 하나씩 옷에 묻혀와 가지고 그걸 떼어가지고 눌러서 열쇠를 만들어서 탈출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감옥이나 교도소 등 갇힌 공간에서 뭔가 살기위해서 아니면 시간이 남을 때 자신이 생업에 관련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방법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그런 것을 작업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나도 몰랐는데 얘네들이 밥풀로 벽에도 옷걸이를 만듭니다. 그러다 우리가 불시에 수금을 합니다. 수금이라는 것은 방에 가서 막 뒤지는 겁니다. 혹시 얘네들이 칼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부정물품을 만들고 숨겨놓았는지... 벽에 보면 웃을 걸 수 있는 것을 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벽에다 밥풀로 휴지걸이를 만들어요. 그런데 그 밥풀을 떼려고 아무 생각 없이 뜯으면 안 뜯깁니다. 정말 단단합니다. 돌보다 더 단단합니다.”

그런데 왜 밥풀로 만들었나요?”

밥밖에 없으니까. 밥풀로 열쇠를 만든다? 물론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좀 과장된 것이고...”

박정기의 <창작의 열쇠>는 자신의 경험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시절 청송 교도소 인근에 살았단다. 그는 어린 시절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면서 한 수감자가 감옥에서 탈옥을 위해 매 식사시간 마다 먹다 남은 밥알을 모아 눌러 건조시킨 다음 열쇠모양의 도구를 만들어 탈옥했다는 기발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얼마나 자유를 원했으면 매일 식사시간마다 밥알을 수의에 붙여 모아 열쇠를 만들어 탈옥한 것일까? 문득 영화 <빠삐용(Papillon)>자유를 향한 위대한 탈출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박정기의 <창작의 열쇠>는 삶의 절실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 절실함은 대한민국의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한 자성(自省)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는 일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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