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사타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사타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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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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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아(JOA)

: 조아(JOA)

 

모든 것은 사타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진가 사타(思他, SATA)는 과거, 지나간 시간의 억압된 상처들을 실재와 가상 세계를 오가며 다양한 방법들로 시각화 한다. 특히, 무의식의 자기술회(自己述懷)를 통해 깊은 상흔들을 유감없이 드러내는데 얼마 전 갤러리 서이에서 있었던 ‘FROM SATA’전에서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제작 된 디지털 합성과 LED, 레진, 물감 등으로 시도 된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사타는 1972년 부산 태생으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2005년 첫 개인전 <히스토리>를 시작으로 <SaTARLIT>, < Sata Air waTer Air> , <SaTARK> , <NEUTRON SaTAR> 등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그룹전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는 심리적 외상을 모티브로 했던 <SaTARK> 연작을 발표 한 이후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작업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와 정성스레 기르며 외로움을 달랬는데 닭이 되었을 때 어느 날 밥상에 올라 와 있었고,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성인이 된 작가는 병아리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던 당시의 아픈 기억을 메타포(metaphor)적 개념으로 드러냈다. 다르게 말해, 트라우마가 된 사건은 작품의 원 관념이 되고 이에 따른 '감정'은 보조관념으로 해피엔팅의 동화적 성격을 띤 작품이다.

지금까지 사타의 작품에는 닭, , 백조, 등과 같은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한편, 바다와 숲, 나무 와 같은 대자연은 한 결 같이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배경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최근 작업에서는 별빛이나 우주를 떠도는 성운에 이르기까지 좀 더 다른 차원의 세계가 빈번 하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진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지되는 대상은 실재의 가상화로 구축된 사타 자신의 모습이다. 사진에 작가 자신이 매번 등장하는 것 외에도, 모든 작업이 자신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만큼, 첫 개인전 작업을 제외하고 이후부터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물론 처음부터 의도 된 바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으로, 그만큼 주제 의식이 분명하고 뚜렷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사타는 과거 어느 한때의 무의식에 내재 된 복잡다단한 감정 읽기가 주된 관심사로, 아찔하고 강렬한 '트라우마'와 같은 감정들을 들춰 판타지적인 상상력과 심미성을 가미해 재현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어려서 경험한 심리적 외상(Psychic Trauma)은 훗날 공상이나 백일몽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만족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예술작품이란 것도 결국 이러한 욕구충족의 한 통로라고 했는데 사타의 사진 전반도 이러한 맥락으로 설명 될 수 있겠다.

사진의 표현 방식은, 환영주의적 형태의 재구성 사진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접목된다. 일반적으로 전통 사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레진 같은 재료를 활용하거나 전기장을 이용해 입체감을 더한다. 뿐만 아니라 LED조명과 아크릴 물감 등을 사용하며, 작품 내용에 따라서는 영상 작업도 병행 한다. 애초에 작품제작 방식을 어느 한정 된 틀에 가둬두기 보다는 작품 주제에 맞는 다양한 기법들을 선호해 주관적인 후 시각화(Post-visualization) 작업 방식을 즐기는 까닭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박적으로 경험했던 정신적 외상에 대한 탈출인 만큼 작업 방식 또한 혼합매체를 사용해 사타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감정 회복을 위한 심상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지되는 점은 최근 작업에서는 그의 시선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바깥 세계인 외부, 즉 우주로 향해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지켜 볼 필요가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난 작업들과 다를 바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의 여정일 것이다. 다만, 보다 근원적인 사유의 세계로 흘러가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현대 예술로서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여러 가지 매체를 혼용 하는 등 사진 작가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 보인다. 사타 역시 지금까지의 작품 경향을 보면 사진 작업을 토대로 다양한 재료의 접목을 시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평면 사진 작업도 있지만 입체성적인 방식을 도입한 작업들도 많다. 주로 어떤 재료들을 사용하며 재현 방식에 있어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몇 가지 재료를 사용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레진(Resin) 사용이다. 처음에 사용할 때는 우주의 깊이 감과 입체감을 사진에서 표현 하고 싶어 사용하게 되었다. 사진은 평면이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느꼈던 장면은 3D처럼 좀 더 현실감 있게 하고 싶어 사진 위에 레진을 겹겹이 얹혀 그 위에 그림이나 혼합 재료를 섞었다. 맨 처음 사진이 있고 그 위에 박쥐(특정 오브제)가 있고 레진을 그 위에 부어 굳혀가는 방식이다. 지난 작업에서 보여준 것들 중에는 완전한 입체성을 띤 작업도 있었다. 그 장치는 전기적 힘을 이용해 중간에서 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가 떨어져 마치 3차원처럼 보인다. 이외에도 다양한 재료들을 접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개인전 제목에 작가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프롬 사타] 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특별히 무조건 내 이름이 들어가야겠다는 발상이나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제목에 내 이름이 들어간 이유는 계속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빼 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 왜냐하면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 속에 나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은 이미지들도 마찬 가지지만 그 이미지 속에서 공유한 감정이나 시간들이 있다. 그러한 맥락이다. 당연히 내 이름이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조차 못 해 볼 만큼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전시 타이틀에 나의 이름을 반드시 넣어야 된다는 이유는 없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전시 제목에서 언제든 빠질 수도 있다.

 

작품의 대부분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 주제로 선정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모든 사진 작업은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사회 인식이나 현상을 잘 모르고 관심이 아직은 없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때 크게 관심이 없는데도 사진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작업은 그 분야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몰입했는가는 결국 드러나게 된다.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결국 나였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 아는 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를 그래서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풀어 작품으로 진행 하다 보면 해소 되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다.

 

일반 대중이 사타 작가를 처음 주지하게 된 것은 <SaTARK> 연작을 통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배경은.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일곱 마리를 사 와서 키웠었다. 가끔은 닭장에서 잘 정도로 애지중지 키웠다. 병아리가 어느 정도 자라 닭이 되어 갈 무렵 집에 돌아와 보니 닭장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외할머니는 쪽제비가 물어서 죽었다고 했는데 그날 밤 닭볶음탕이 상에 놓여 있었다. 몇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았다. 병아리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병아리가 온전한 닭이 될 때까지 지켜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 작업은 다 자라지도 못한 채 죽게 된 닭들을 위한 천도재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움 때문에 접근하지 못한 기억을 더듬으며 만남부터 헤어져 그리워하는 현재까지 그들과 내가 함께 노는 모습들이 들어 있다.

사타의 대표작은 단연 <SaTARK>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연작에서 ''은 가장 주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는데 ''이미지가 일반적인 닭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독특한 형상이다. ''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 된 것인가.

작품에 등장하는 닭 이미지는 전체가 닭은 아니다. 머리와 다리는 닭이다. 그리고 몸통은 거위고, 날개는 백조다. 내가 본 병아리들의 마지막 모습이 빈약해서 토실토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람하거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대부분 합성한 사진들은 직접 촬영한다. 닭은 한 마리를 사 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거위나 백조는 동물원에 가서 촬영해 합성 할 소스를 만들었다. 백조의 흰 날개는 아름다워서 가져왔지만 닭 머리만큼은 닭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했다. 왜냐하면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작품을 볼 때 자연스럽게 닭이 연상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촬영한 닭을 부분부분 잘라 하나의 이미지로 다른 출신성분을 합성해 슈퍼 닭을 구현했다. 그런데 초창기 때는 저작권에 대해 잘 몰라서 인터넷에서 찾아 오려서 쓰기도 했다. 지금은 촬영하거나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한다. 만들거나 촬영이 도저히 안 되는 것은 이미지 차용을 하지 않고 필요한 이미지를 사서 쓰는 경우도 드물기는 하지만 있다.

< SaTARLIT >은 작품은 제목이 독특한데 어떤 작품인가.

전시제목 'SaTARLIT'STARLIT(별빛) + sata (사타 닉네임)= SaTARLIT 이다. '별빛에서 함께 논다.'라는 뜻이다. 심오한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별하고 내가 놀았으니까 그렇게 정한 제목이다. 어느 늦은 밤, 나가면 막 차를 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애매한 시간 이었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 들고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가 또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어느 공원에서 내렸다. 주차장이 꽤 큰 체육관이 있는 공원이었다.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벤치에 앉아 멍 하니 있었다. 그런데 순간 어느 우주 공간의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무아지경에 빠질 만큼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촬영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바로 촬영 한 것을 확인 하진 않는다. 일주일 정도 지나 그때 찍은 사진들을 봤더니 행복해 하는 모습이나 장면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후부터 비슷한 장소들을 찾아다니면서 혼자 놀면서 촬영을 했다. 제목도 전시 하기 얼마 전에 정해 졌다. 이 전시는 설치나 영상, 그림도 일부 있었다.

사타 작가 자신의 실수로 컴퓨터 안의 수많은 사진 작업 데이터를 손실하게 되어 <NEUTRON SaTAR >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안의 수많은 데이터들이 갑자기 손실되었을 때 잠깐 패닉 상태가 되었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인생이 끝났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데이터가 워낙 많아서 한번 손을 대면 몇 달은 정리해야 될 정도였다. 그래서 어찌 되었든지 간에 정리가 저절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었다. 뭔가 큰 손실을 입었을 때 한번쯤 고민을 해 보거나 다양한 생각들을 해 보게 되는데 이번 작품이 바로 그런 지점에서 탄생했다..

큰 사건이나 사고로 금전적 손실을 입었거나 피해로 인해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었을 때,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뭔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봤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 그대로 있게 된다. 어떻게 되든 간에 나는 있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것과는 별개로 세상에 나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주지해 보자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감정들에 크게 동요되지 말자는 아니며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사진에 인물이 들어간 경우 작가 자신이 모델이 되어 연출했는데 촬영 방법이 궁금하다.

얼굴은 대부분 자세히 노출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상상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사진이 합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옷을 입고 있는 사진들은 대게는 똑 같은 옷을 2벌 준비해서 촬영을 한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 밖에 찍지를 못한다.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은 혼자서 촬영 했는데 촬영 위치에 삼각대를 놓고 타이머를 설정한다. 그리고 리모컨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모든 걸 하다 보면 제대로 잘 나오기가 어려워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은 몇 일째 반복 촬영 했다. 촬영 장소는 2009년도 이전까지는 주로 부산에서 촬영했다. 이후 작업은 외국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촬영 장소는 크게 의미가 없다.

사진을 통해 관객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지점은 어떤 것인가.

소통 지점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나하고 나 사이의 대화이다. 메시지는 나 자신 스스로 치유와 화해를 하는 것이다. 관객에게 친절한 작가는 못 된 것 같다. 다만, 자유롭게 이미지 속을 헤엄치며 노닐며 어떤 감정이든 얻어가길 관객들에게 바랄 뿐이다. 좋아하는 관객은 미취학 아동이다. 개인적인 기준인데 미취학 아동들이 갤러리에 와서 내 작품을 보고 표현해 주는 것들이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

앞으로 새로운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트라우마나 상처 기억 등의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만 해왔다. 물론 여전히 하고 싶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많이 있지만, 나와 연결된 사람들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과 사람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극히 낯가리는 성격의 나를 생각해 보면 나름 대단한 모험이 될 것이라 설레고 있다.

낯선 사람과 익숙한 사람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통해 나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세상이 있는 환경으로 이동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어딘가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사타입니다라고 인사를 한다면 반갑게 맞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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