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우 KOH Sangwoo [Expansion of boundaries 경계의 확장] 展
고상우 KOH Sangwoo [Expansion of boundaries 경계의 확장]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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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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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우 KOH Sangwoo [Expansion of boundaries 경계의 확장] 展
오 프 닝 2019년 10월 16일(수) 6:00 PM
기 간 2019년 10월 16일(수) - 10월 29일(화)
장 소 갤러리 나우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9, 관훈동 성지빌딩 3F
02-725-2930 / gallerynow@hanmail.net

 

제 9회 갤러리나우 작가상 부문에 고상우 작가가 수상했다.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블루오션이라고 소개되는 고상우는 2004년 한국일보가 선정한 세계를 빛낸 한국예술인 10, 2008년 아트인 컬쳐가 선정한 코리안영아트파워 100인에 선정된 바 있으며 중국에서 열린 798베이징 비엔날레에 한국작가로 초대되기도 했다. 서울을 비롯하여, 뉴욕, 런던, 홍콩 등에서 개인전을 갖고 다수의 국제전시에 참여하고 있으며 해외 유수 옥션하우스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다수의 미술관들의 그룹전에 초대 되었으며, 네델란드 완루이 갤러리, 런던 제임스 프리만 갤러리, 홍콩 캣스트리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푸른색 사진예술의 선구자(pioneer of blue photography)'로 현지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하이퍼리얼한 로맨스(Hyper-real romance for the digital age)'를 표방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고상우의 작품은 그에 걸맞는 강렬한 색감과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주목 받고 있다. 독특한 작품제작 과정 역시 평단의 눈길을 끌고 있는데 그것은 사진, 회화, 오브제, 퍼포먼스가 혼합된 것으로서 총체예술적이면서도 탈장르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제작의 최종 결과물로서의 작품 역시 선뜻 한가지 장르로 국한시킬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기저로 하고 있지만 바디페인팅과 컬러네거티브 과정을 거친 강렬한 색감과 회화적 구도는 상당한 회화적 특수성을 띠고 있다. 한편, 작가는 바디페인팅과 촬영 과정을 퍼포먼스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작품이 퍼포먼스 예술의 기록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방위적인 제작과정과 강렬한 색채는 고상우 작품의 자전적 요소를 비롯한 성, 인종, 문화와 결부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탐구정신, 존재론적 성찰의 메세지를 극대화시키는데 매우 적절히 이용되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좀 더 보편적인 주제로 전향, 더욱 정교한 색감과 텍스쳐, 풍부해진 회화적 감수성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현실과 픽션, 회화와 사진,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경계를 더욱 좁히며 초현실적인 작품의 진경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드로잉을 융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멸종위기 동물들을 재탄생 시켜 그들도 인간처럼 영혼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한다. 동물의 몸과 눈 위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마음, 심장, 사랑, 희생, 생명을 상징하며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고상우 반전의 전략

민병직 (미학, 독립큐레이터)

 

반전反轉 반전은 인생이나 극적인 드라마 구조에만 있는 것만이 아니다. 사진 역시 반전(네거티브)에 반전을 반복하면서 포지티브한 재현의 과정을 거치는데, 사진이 가지고 있다는 투명한 재현의 신화 역시도 사실 그 복잡한 속내가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의 전도라는 광학상의 원리 자체가 반전이라는 컨셉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전 혹은 네거티브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진적 재현의 경우 사진이 가지고 있는 반전의 속성이 쉽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반해 고상우의 작업은 이러한 사진의 네거티브한 속성 자체를 표면화, 전면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단순히 이런 반전의 효과, 곧 컬러 네거티브의 이미지 효과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내용으로 연동시켜 컨셉화하는 점에 있다.

컬러 네거티브의 이미지 효과 자체만으로도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어릴 적 신기하게 보았던 컬러 필름을 추억하게 하는, 독특한 색감의 효과가 눈길을 잡아 끌기 때문이다. 전도된 색상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색감 이상의 것들이다. 세상의 이면과도 같은 색감 자체가 깊은 느낌을 전하고 있고, 반전된 색감을 통해 일정한 의미론적인 효과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속셈은 이러한 반전된 이미지 효과를 매개로 하여 어떤 의미 전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푸르게 보이는 모델이 실은 한국계 혼혈 여인이라는 고상우 사진들의 기본적인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작가가 활용하는 반전의 전략은 전도된 이미지 색감만이 아니라 이미지를 둘러싼 것들, 텍스트, 배경, 모델의 포즈, 메이크업, 제스처, 의복, 소품 등 화면을 이루는 전체적인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연출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작가가 구사하는 반전의 전략은 전체적으로 일관적이며, 다층적인 코드화를 이루고 있다.

이미지 효과뿐만이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전체적으로 반어적인 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기에 사진이 가지고 있는 네거티브한 속성을 형식화된 내용으로 전용시켜 펼쳐 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형식이 내용으로 전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어적인 수사학의 작동. 간단한 방정식 같기도 한 이러한 의도는 비교적 자명한 의미 작용을 하고 있다. 고상우는 메인 모델로 한국계 혼혈 여인을 축으로 하여, 일견 아름다움을 둘러싼 사회적인 의미 작용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반어적인 작가의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뚱뚱한 아시아계 혼혈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코드화, 곧 편견이나 가치 평가에 대한 작가의 문제 설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제적인 효과는 단순하지 않고 좀 더 복잡하고 양가적으로 다가오는데 작가가 겨냥하고 있는 반어적인 수사학이 반전된 이미지 효과에서뿐만이 아니라 작업 전반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반전된 색상의 효과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표제, 작업 속의 텍스트, 오브제, 모델의 포즈나 제스처를 전체적으로 연출한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연극적인데 반전의 묘미를 살리는데 있어 이만한 작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컨대 여인의 갖가지 포즈나 제스처는 언뜻 어색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도되었음이 분명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특정하게 관례화된 포즈를 문제시한 것인데,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포즈나 제스처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델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나비나 꽃의 설정도 여인의 판타지에 대한 반어적인 설정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의미상으로 보자면 화려했을 오브제의 효과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 또한 사랑, , 두려움, 가시에 찔린 여인 등의 수사학적인 네러티브가 반복되고 있는데, 여성의 판타지와 두려움이라는 양가적인 의미들을 담아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작업을 단순히 사회적으로 규정된 아름다움에 대한 작가의 불편하고 비판적인 입장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둘러싼 사회적인 코드화에 대해 작가의 비판적인 발언쯤으로 읽혀질 수 있겠지만, 작가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맥을 고려해 본다면 자신의 체험과 결부된 좀 더 복잡하고 양가적인 뉘앙스들을 전달하기 위해 의도된 설정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낯선 동양인으로 살아가며 느껴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푸른 몸의 모델로 설정하여 이를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결국 이질적인 모델의 설정 자체가 작가 자신의 체험과 감정이 이입된 설정인 것이고, 모델의 반전된 색감 효과나 의도적으로 연출된 포즈를 통해 이질적인 땅에서 낯선 그들에게 다시 낯설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복잡한 사적인 체험을 전이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낯설고 이상한 타자의 이미지가 이번 전시에서 반복되고 있는 비대한 푸른 여인의 이미지인데, 밝아 보이지만 우울한 느낌을 주는 푸른 색감의 효과가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양가성. 전체적으로 이런 양가적이면서 애매한 효과가 반복되고 있다. 작업 전반에서 화려하면서도 우울한 여인의 판타지, 양가적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묘한 태도를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여인의 복잡하고 양가적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화면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작가의 또 다른 자아, 전도된 자신인 셈이고, 그런 면에서 작가의 세상에 대한 특정한 발언을 담아내고 있는 매개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반전된 색감의 효과뿐 아니라 갖가지 오브제의 설정이나 모델의 포즈나 제스처를 통해 의도적인 연출을 수행한 것이다. 다소 어색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델의 연극적인 포즈가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작가의 반어적인 입장을 전달하는데 있어 제법 효과적인 연출인 것 같다.

셀프 포트레이트라는 사실을 따로 전해 듣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작품도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 주는 작업이다. 이 역시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의미 작용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양가적인 세상에 대한 태도나 입장으로 다가온다. 이는 네거티브 개념이 주어진 대상에 대한 부정이나 비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반대의 의미인 포지티브 개념 또한 상정하고 있다는 면에서 이른바 이항 대립 (binary opposition)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네거티브에 머물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게 의도된 연출과 설정을 통해 이를 메타적으로 사유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나 문맥을 의도적으로 들추어냄으로써 얼마간 탈코드화된 의미 작용의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인 듯싶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문화적 코드화를 접합하고 문제시 하는 설정 자체가 그러한 문맥화된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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