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철 사진전
양성철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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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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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19년 11월 8일(금) ~ 2019년 11월 17일(일)
장 소: 디갤러리 대구광역시 중구 동덕로14길 46 (김광석길)
문 의: 010-3528-8716

10만 년 전, 현생 인류의 두뇌가 진화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장식하고 자신의 생각을 상징적,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장 많이 사용된 색깔 중 하나가 빨강이었다. 빨강은 모든 문화가 공유했던 최초의 색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담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뿌리는 빨강을 의미하며, ‘를 뜻하는 ‘dam’이라는 낱말과도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아담(A-dam)피의(of blood)’라는 뜻이다. 빨강이 피-탄생-죽음-생식력을 상징하는 것은 모든 대륙의 문화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 빨강은 활기와 정력, 혹은 기쁨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빨강은 사악한 색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세유럽에서는 악마를 종종 빨갛게 묘사했다. 현대서구사회에서 빨강은 여성의 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빨간 립스틱, 빨간 매니큐어, 빨간 드레스가 그런 역할을 한다. 20세기 광고의 홍수시대에 접어들면 빨강은 여성의 성적 매력, , 섹스, 정욕 등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간다.

 

한편 빨강은 정치적 좌파, 즉 공산주의와 혁명의 피와 연관을 맺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빨강이 저항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789년 바스티유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 때였으며, 1971년 파리 코뮌 당시 현수막이 빨간색이었으며, 그 뒤로 빨강은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깃발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후 극심한 좌우익 대립 시기에 붉은 색은 좌익을 상징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 의미는 대폭 증폭되었다. 해방 시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양성철 작가는 성장과정에서 심한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를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게다가 그는 정치적으로 보수의 텃밭인 대구에서 평생 살았기 때문에 이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테다. 이번 작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념적 요소만 있는 건 아니다. 대중소비사회가 야기하는 판타지와 욕망, 물신적 세계의 억압, 성과 관련된 무의식적 요소, 초현실적인 샤머니즘의 세계 등 어느 한쪽으로 규정할 수 없는 잡다한 빨강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하나의 의도에 의해 구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포착된 파편적인 이미지를 채집해놓고 있다. 특이한 점은 개가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개는 대개 클로즈업된 꽃이나 여성의 몸과 함께 제시되고 있어 성적인 암시를 드러낸다. 철망에 갇힌 개와 자물쇠는 또 다른 의미망을 형성한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꿈에 나타나는 개는 본인의 동물적인 본성을 상징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개는 더욱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프로이드의 이론에 기대면, 이 사진엔 무의식이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말을 바꾸면 무의식적 리비도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빨강색이 개입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본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보는 이의 지각 심리적, 문화적 감각에 관련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람의 시각에 대상이 잡히는 순간 즉각적으로 의미작용이 이루어지며 그것은 편견이라는 색안경으로 변형된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의 이번 작업은 레드콤플렉스이라는 색안경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바쳐지고 있다. 그것을 작가는 언캐니(Uncanny)라는 미학적 방법으로 접근한다. 언캐니란 우리말로 낯선 친밀함’, ‘두려운 낯설음이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일상에서 자주 보았던 대상이 어느 순간 낯선 두려움의 대상으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말한다. 작가는 아주 친근하고 익숙한 사물을 포착하여 과감한 생략과 불안정한 구도로 재배치한다. 그때 우리는 인지의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대상이 익숙하기 때문에 그 충격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눈여겨 볼 점은 이번 작업이 단사진이 아닌 연작사진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빨강을 해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 단사진으로 드러낼 수 없는 내면의 복잡하고 심층적인 이미지를 몽타주로 엮은 것이다. 이질적인 장면을 병치하고 이미지를 충돌시킴으로써 하나의 추상적인 의미를 형성하려는 시도다. 서로 다른 이미지의 어긋남이 야기하는 낯설음이 시각적 충격을 불러내고 인식의 새로움을 가져다준다. 이 지점에서 즉물적 성격을 지닌 컬러는 고유의 상징에서 벗어나 작가의 의도를 내포한 추상적 이미지로 전화(轉化)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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