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빛과 그림자의 단상... 채미경
한 점의 빛과 그림자의 단상... 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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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1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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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JOA)의 특별한 사진읽기

채미경은 수년간 일상에서 발견되는 현대인들의 고독에 주목해 왔다. 특히, ‘인간은 누구나 홀로 살아 간다는 삶에 관한 담론을 모티브로, 장자(莊子)를 비롯해 다양한 철학적 기반을 섭렵하며, 이를 빛()과 그림자(어둠) 등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해 왔다.

 

2019년 서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바 있는 대표작 <RE_SHADOW> 연작 역시 기존의 작업 방식과 동일하게 리얼리티(reality)를 기반으로 도시의 일상적 풍경 안에 놓인 고독한 현대인들을 포획 한 작업이다. 사방으로 빼곡히 둘러 쌓인 고층 건물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친숙 한 듯 낯선 공간의 빛과 어둠, 그 사이로 무심코 오가는 사람들,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자 작가 자신을 반추한 풍경으로일상의 특별한 대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태양 은 건물의 특정부위(바닥면)에 닿아 어둡고 칙칙한 무거운 암흑을 거둬내며 환하게 일렁인다. 여기서어두운 그림자와 대비되며, 단순하지만 특별한 화면을 구성하며, 작가의 생각을 전달해주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인물군의 그림자 역시 사진 전반의 조형 요소로써 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단편적인 일상을 불러들이며나의 고독감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만든다.

 

이번 작업은 도시의 랜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의 실내에서 촬영한 것으로, 소비와 자본의 축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의한 현대 도시는 과거보다 복잡한 구조로 형성 되어왔음을 주지시키려는 의도 또한 담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형 건물의 창에서 들어오는 빛(태양)을 통해 현대인들의 고독을 사회관계망의 범주 안에서 발견하고 이를 토로한다. 어딘가 불편하고, 결여 된 듯한 어두운 암부와 어디론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이처럼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군의 그림자는 현대인들의 단절을 암시하며, 회색지대의 외로운 표상들로 무언가를 갈구하는 비애감(melancholy)마저 풍긴다.

어둠이 짙게 깔린 특정 부분들을 클로즈업(closeup)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진 속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에 보다 집중하도록 이끈다. 사실 채미경은 무엇을, 어디서 찍었을까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며 보았는가를 드러내기 위해 철저히 전략을 세워 진행했다. 촬영은 캐논 6D 카메라와 MARK 3 카메라 두 대로 상황에 따라 번갈아 사용했다. 주로 24-105mm 렌즈를 이용해 일반적인 수평적 시점이 아닌, 하이앵글로 내려다 본 시점(視點)을 선택했다. 촬영 과정에서 특히 주지한 점은의 빛깔이나 밝기의 차이보다는 스팟(spot)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그림자의 다양한 형태에 따른 추상성에 집중했다.

 

채미경은실내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과 건물 외부에서 내부로 쏟아지는 밝은 빛의 명암과 형태가 결정적 순간이 될 때 셔터를 눌렀는데 이는 나 자신을 포함해 현대인들의절대 고독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어둠속에서 빛나는 강렬하고 냉소적인 한 점의 빛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어둠속에서 누군가를 향해 비추는 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자신이 염원하는 어떤 아우라(Aura)를 부여하는 정신적 영역으로 희망의 반전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 가지 눈 여겨 볼 지점은 그림자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림자는 본래 빛이 강할수록 짙게 드리워진다. 이를 주목한 채미경은 사진에서 플라톤(Plato, Platon)이 말한 현실에서의 지고한 ()’을 의미하는 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상징성을 배가 시켰다. 나아가 플루티누스(Plotinos)의 정신의 표식으로써의 으로 어둠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했다. 그래서일까. <RE_SHADOW> 사진에서어두운 그림자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애환들이 잔잔히 밀려오는 듯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한 점의 빛과 그 빛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에 시선이 고정 되도록 이끌고 있는 작가는 동시대 현대인들의 고독감을 조금은 넉넉하게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나칠 정도로 미칠 만큼 고독하거나 외로운 것이 아닌, 일상에서 살짝 왔다 가는 가벼운 고독을 말하고자 한다고 덧붙인다. 적당한 고독 즉, 적당한 그림자는 우리의 인생에 을 향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채미경의 <RE_SHADOW> 작업은 도심 속, 누군가의 그림자를 통해 타인의 그림자 다시 들여다보기가 아닌, 엄밀하게는나를 돌아보기라고 할 수 있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시각적 나레이션으로 현대인들의 삶 자체를 가장 본질적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대인들에 대하여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작업 <변화_無常> 연작은 빗물 웅덩이에 반영 된 생동하는 나무를 통해 숙명적인 삶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무파문(波紋)’의 수묵화적인 이미지는 미적 효과 이외에도 흑백의 톤으로 자신만의 시각으로 투영된다. 변화_무상의 연작 역시 기존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빛과 그림자(반영)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은유적 매개이자 위안을 받는 대상으로 펼쳐진다.

채미경의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 결 같이 빛과 그림자들이 등장하는데, 어떤 작업을 막론하고 어둠을 밝히는 빛의 지점에 모든 것들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이는 자신의 삶을 긍정으로 이끄는 시선이며, 고독한 삶을 성찰해 나가는 과정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이것이 곧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숨겨진메시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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