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갤러리 강홍구 'Underprint' 展
서이갤러리 강홍구 'Underprint'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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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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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강홍구
전시제목: Underprint
기간:2020년 9월 4일(금) - 10월 4일(일)

 

 

Underprint 전시에 부쳐

 

이상미(서이갤러리 대표)

 

길고 긴 장마를 끝낸 하늘은 비를 쏟아낸 적이 없었던 양, 하얀 구름들의 유희가 한창이다. 아직 폭염이 남았지만, 이도 새로운 계절에 밀려 곧 추위를 걱정할 날이 머지않았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다. 어려움이 커질수록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는, 저마다의 삶을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쉽지 않다.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할 수 있는 만큼 일상을 살아가는 수밖에. 갤러리는 갤러리로서 전시를 이어가,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이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번 강홍구 작가의 언더프린트 작업을 다시 내어놓는 이유도, 관람자들이 시름을 뒤로 하고, 그의 작품 앞에 한참을 서서 바라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언젠가 이 어려움도 강홍구 작가의 작업처럼 프린트 되어, 우리의 삶에 언더프린트로 작용할 것이다.

 

강홍구 감옥 jail 2015 acrylic on photo 100X65cm
강홍구 감옥 jail 2015 acrylic on photo 100X65cm

 

강홍구 작가의 언더프린트 작업은 그 안에 많은 시간의 켜가 쌓여 있는 작업이다. 우리의 세계는 켜켜이 모인 시간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는 많은 이야기와 그 시간들이 남긴 흔적들이 존재한다. 언더프린트 작업의 배경이 되는 촬영은 주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주변에 남긴 흔적이나 낙서이다. 거기에 작가는 작가만의 낙서를 덧입힌다. 낙서란 아무 생각 없이 휘갈겨 쓴것 같지만 무의식의 발현이자 무언가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실마리일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거창하지 않지만 세상에 대한 작가의 작은 유머로서의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강홍구 작가의 낙서는 텍스트로서보다 이미지로서의 낙서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에 익숙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간과하며 살아 갈 때가 더 많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건물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길가 담벼락에도 언제나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그것들을 감지해 내고 돌아 볼 여유는 없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날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핸드폰이라는 기계에서, 시시각각으로 보여주는 자극적인 이미지들에 반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강홍구 작가는 작품에 코끼리를 집어넣을 공사장을, 낡고 엉성하게 프린트 된 그림 이미지를, 창문 밖에서 볼 수 있게 붙여 놓은, 그 담을 끼고 살았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기에 주변을 지나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을 것이다. 사진에 담긴 세월의 흔적에, 작가가 덧입힌 작가의 흔적, 기존의 흔적들에 현재 작가의 낙서가 중첩되는, 시간과 시간이 만나고 혼합되는 언더프린트 작업은, 지금에 와서 보아도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게 한다. 그것이 과거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작가가 과거를 연결해 이미지를 덧입힘으로써, 과거의 공간과 작가가 만들어 낸 현재의 공간에 우리를 서게 한다. 그래서 강홍구 작가의 언더 프린트 작업은 우리에게도 우리가 사는 주변을 돌아보게 하고, 그 유머에 미소 짓게 한다. 그것이 때론 웃을 수 없는 아픈 과거의 흔적일지라도 . . .

 

강홍구. 게시판 bulletin board 2015 acrylic on photo 100X65cm
강홍구. 게시판 bulletin board 2015 acrylic on photo 100X65cm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리한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가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것도 흔적만을 남기고 결국은 끝날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 접어드는 9, 서이 갤러리에서 강홍구 작가의 [언더프린트] 전시 감상을 통해, 우리는 사는 이곳에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인지, 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전시의 문을 연다.

 

작가노트

underprint

 

아래의 글들은 2015년 열었던 개인전을 열 때 썼던 글이다. 특별히 고치거나 덧붙일 것은 없어 그냥 싣는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미술과 사진에 종사한지 삼십년이 넘었다. 알게 된 것은 미술은 지극히 시시한 것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미지를 둘러 싼 주도권은 산업에 넘어 간지 너무 오래이다. 이제 작품들을 사고, 미술관을 짓고 ,전시를 기획하고, 팔아먹는 것이 진짜 예술이 되었다. 작가니 뭐니 하는 사람들은 중소 생산자에 지나지 않는다

 

강홍구. 고릴라 gorilla 2015 acrylic on photo 100X35cm
강홍구. 고릴라 gorilla 2015 acrylic on photo 100X35cm

 

언더 프린트 underprint 는 돈이나 우표의 밑바탕에 깔리는 희미한 인쇄를 말한다. 이번 내 작업들도 그와 비슷하다. 여러 곳에서 찍은 벽 혹은 담 사진 위에 뭔가를 그린다는 점에서.

 

담 사진들은 서울 재개발 지역, 창신동, 한남동에서 부산, 청주, 전남 신안군에서 찍었다. 어디엔가 쓸 수 있을 것 같아 찍어 놓은 것들이다. 담 위에 왜 뭔가를 그렸냐고? 그냥 그리고 싶어서였다. 십 여 년 전 부터.

우리나라 담은 일본이나 유럽과 전혀 다르다. 한국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엉성함, 정리 덜 됨, 내버려 둠에 가까운 분위기. 그리고 그건 비싼 건물이나 부잣집 담이 아니라야 더 두드러진다.

 

강홍구. 참새 sparrow 2015 acrylic on photo 240X100cm
강홍구. 참새 sparrow 2015 acrylic on photo 240X100cm

 

그릴 내용들을 특별히 정하지도 않았다. 사진을 프린트해서 붙여 놓고 뭔가를 그리고 싶어질 때까지 드로잉을 하거나 생각을 하다 떠오르면 그렸다.

다 그려놓고 보니 몇 그룹으로 나뉜다. 먹을 것과 빈 그릇들, 공사장의 인상과 몽상, 조금은 정치적인 내용이 있는 것들, 이미 잘 알려진 걸작에 관한 언급이나 패러디, 자전적이거나 미술 자체에 대한 냉소로 되어 있다. 또 몇 작품들은 초등학교 일학년인 아들의 도움을 받았다. 아들한테는 같이 그린 작품이 팔리면 십 퍼센트 주기로 했다.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까지 쓰고 나서 우연히 김우창의 글을 다시 읽다 그가 한국시의 실패를 말한 대목을 보았다. 서정주를 비롯한 시인들이 일원적 감정주의와 자위적 자기만족의 시를 씀으로서 경험적 집적과 모순을 넘어서는 전체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구조화 하는데 실패했다고 쓰여 있었다. 구체적 경험과 전체적 보편성이라-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뜨끔했다. 심미적 이성의 리얼리즘이라는 퐁티 영향을 받았다는 이 개념. 사십 여 년 전의 글인데 우리 미술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Que sera sera! 될 대로 되겠지. 미술 따위가 어찌 되든 내가 알게 뭔가.

 

강 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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