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로 보는사진 이홍순 개인전
회화로 보는사진 이홍순 개인전
  • 포토저널
  • 승인 2020.11.1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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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1.-27
아지트갤러리 : 인사동 마루본관2층
오픈닝 202.11.21. 오후3시

풍류자적(風流自適), 회화로 보는 사진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형과 색의 강렬한 대비가 녹아든 눈을 잡아끄는 이미지들, 추상인가 싶더니 우리일상에서 채집한 삶의 흔적들이다. 이중대비의 시선은 넓은 면을 붓으로 옮겨놓은 회화적 시선과 삶의 흔적을 미적 가치로 옮겨놓은 현장 아카이브 사진의 결합이다. 이홍순 작가는 꽤나 늦게 사진예술에 입문했다. 1944년생 8년차 작가인 그의 작품엔 21세기 청년아티스트를 능가하는 신감각과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살아온 한국인으로서의 역사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살아 숨 쉰다. 다큐멘터리와 아카이브 사진, 예술사진들을 두루 섭렵하며 회화이론의 다양한 면모를 공부한 것은 70대부터의 일이지만, 작품 안에 담긴 회화적 사진의 추구는 자신의 오늘을 뛰어넘고자 하는 젊은 아방가르드적 자세라고 평가할 만 하다.

 

흔적을 뒤집어 추상을 개념하다

미발표 신작들로 구성된 이번 개인전의 주제는 회화로 보는 사진이다. 말 그대로 포토그래퍼로서의 정체성 앞에 예술을 위한 추상을 하나의 기법이자 미학으로 삼은 것이다. 작가는 대비효과가 주는 강렬함을 찾기 위해 다다이즘에서부터 시작해 추상표현주의까지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어느 누구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자유영역에 대한 시각적 판단 때문이었다. 영향을 받은 작가는 주로 박서보와 쿠사마야요이 같은 아시아의 거장들, 이들에 대한 오마쥬 형식의 사진이 현재 작품의 바탕이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작가로 박서보를 꼽은 작가는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와 추상미술의 발전적 행보 안에서 한국적 이미지를 어떻게 사진이미지와 결합할 것인가를 모색한다. 스밈의 미학을 사진에 녹여내면서도 강렬한 색조를 과감하게 올려낸 이미지들은 의외로 근대사를 관통한 도시의 흔적들과 조화를 이루며 정반합(正反合)의 독특한 컴포지션을 만들어낸다. 폐가의 흔적으로부터 되새겨낸 풍경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도시이미지를 찍기 위해 작가는 다양한 위험을 무릅쓰기도 여러 차례였다. 인사동 피맛골을 담은 사진들 속에는 1920년대 이상과 구본웅의 허물어진 기억이 담겨 있다.

사진의 회화화(繪畵化), 근대사의 흔적 위에 대가들의 추상화를 오마쥬한 작업들은 작가가 아카데믹한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인지 모른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작가가 추상이전에 강렬한 색을 가진 꽃정물화를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추상과 가장 가까운 대상물인 꽃은 그 자체로 다양한 색감과 풍부한 에너지를 포함한다. 일반 사진작가들이 플로리스트의 손을 빌리는 것과 달리, 작가는 꽃을 직접 고르고 꽃아 가장 아름다운 각도와 조명까지 고려한 꽃 사진을 찍는다. 특히 기존 작가들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등판에 실크스크린이나 판화기법을 활용한다. 앤디 워홀의 기법을 차용(借用)하면서도 원()안에 이미지를 반복해 올려 내거나 그 안에 자신만을 독특한 시각을 얹어내는 것이다.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도시의 흔적과 평면적으로 마감된 면의 컴포지션은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은유하는 언어적 역할을 한다. 한국 근대사의 풍경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회화적 관점은 간편하고 효율성만을 염두에 둔 오늘의 여러 욕망과 모순들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사회적이면서도 당연히 회화적인 이홍순 만의 해석은 현대사를 몸소 체험하지 않았다면 담지 못할 우리 모두의 과거이자 현재 일지 모른다.

풍류로 보는 관조, 한국적 추상으로 나아가다

70대 신진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홍순은 유쾌하면서도 호탕한 성향을 가진 남녀노소 누구와 대화해도 소통가능한 아티스트다. 대학졸업 후 6년간 장교 생활을 하면서 월남전까지 참전했던 작가는 피엑스 담당을 할 만큼 영어에 능통해 30세 이후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종합상사에서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한국이 상사시대를 거쳐 제조업과 국제화 시대를 견인할 때 그 중심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일꾼으로 세 아이의 아버지로 건실한 삶을 살아낸 우리네 아버지이자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었다. 은퇴 후 모두가 자신의 삶에 멈춰있을 때, 작가는 세계 속에 도전하던 당시의 리더십으로 내면의 예술가를 당당하게 끌어냈다. 삶을 관조하면서도 노년의 새로운 방향성을 개척정신과 리더십에서 찾은 것이다. 작가는 이것이 해병장교와 상사맨을 했던 과거의 도전적 성격에서 묻어나왔다고 말한다. 연고도 없던 해외 만국박람회 등에서 자본과 기술 등을 도입했던 정신은 신기술협회 회장까지 역임했던 그의 돈키호테같은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미에 대한 감각과 사진에 대한 철학을 습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워낙에 포기가 없는 성향이었고 70대에 손에 든 카메라이기에 내 삶의 마지막은 이 길뿐이라는 다짐이었다. 기계에 대한 테크닉이나 컴퓨터에 대한 이해들이 어려웠고, 구세대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진 아카데믹한 사진계보다 막 졸업한 신진대학생들과의 교류나 그들의 힌트를 얻었다. 대학편입도 나이로 거부당했지만 힘겹게 들어간 상상마당에서는 부딪혀 가며 도전했고, 한국의 대표 사진작가들을 찾아가 수학하면서 비은염프린트와 판화실크스크린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공정이 길지만 최근까지 하고 있는 검프린트 작업은 은은하고 깊이 있는 회화적인 모뉴먼트와 잘 맞았고, 19-20세기초 유럽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기법이기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한옥란.김수강, 임양환 교수 등을 사사하면서 깊이를 더해온 작가는 꽃정물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 조명수업까지 찾아듣는 열정을 보였다. 이후 한옥란 교수와 함께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는 40여회의 단체전과 꽃 아이템만으로 20194번의 초대전을 거쳤다.

 

이 모든 시간들은 새로운 내용과 소재를 찾는 시간이었다. 한계점은 손에 익히는 기법이 완성됐음에도 나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데 느낀 부족함에서 찾아왔다. 이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국현대미술아카데미와 다양한 갤러리투어를 통해 미술이론을 채워나갔고, 일본 나오시마에서 이우환의 미니멀한 개념성과 박서보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면서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 나갔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것은 수묵과 추상으로 대표된다는 생각이 파고들었고, 다양한 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사진으로 미술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말 그대로 박서보의 작품에서 읽어낸 비움과 수신(修身)은 풍류하며 세상을 즐겼던 우리네 선인(先人)들의 유유자적하는 정신과 맥을 같이 한 것이다. 그렇게 결합한 회화로 보는 사진은 이제 도시공간을 넘어 한국의 전통적인 흔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돌담궁궐기와파편문화재건축문화재(능과 사찰) 등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위에 추상을 얹어내는 작업들, 이른바 흔적과 추상은 해외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작가에게 한국적 정체성을 향한 새로운 실험이자 도전이 되었다. 예술로 영혼을 정화하는 작업들을 통해 한 인간이 예술로 마무리 되는 삶을 살겠다는 이홍순 작가의 행보는 실존적 삶에 대한 귀감과 동시에 오늘에 안주한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을 남긴다고 할 수 있다.

구도심(폐가 등)의 아카이브를 살리면서도 이것을 다시 재해석하여 나만의 세계를 창조해보자. 남들이 갖지 않은 나만의 역사를 만들자. 별난 사람이니 별나게 즐겨보자.” - 작가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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