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OKSANG LIM 나는 나무다
임옥상OKSANG LIM 나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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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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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02일(화) - 02월 28일(일) (월요일 휴무)
2021년 02월 02일(화)  3:00 – 6:00 PM
10am - 6pm
갤러리 나우 -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길 16 (신사동 630-25)
02-725-2930 / gallerynow@hanmail.net

나는 나무다.

임옥상

10월 말 성균관 명륜당을 찾았다. 다시 은행나무를 그리기 위해서다. 6.25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해 3개월째 씨름을 하고 있던 차였다. 유례없는 긴 장마와 무더위, 거기에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였다. 벌써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야했다. 600년 은행나무의 기운이 절실했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아직 푸르렀다.

 

1970년대, 군부독재 반공이데올로기의 전쟁 일촉즉발의 분단된 나라에서 더는 살 수 없다는 이민, 유학 열풍이 휩쓸 때 나는 역으로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곳 이 땅의 한 그루 나무가 되겠다 결심하였다. 한 그루 나무 밑에는 길이 생긴다. 나무가 자랄수록 길은 선명해지고 커진다. 사람들이 꼬여든다. 쉼터가 되고 놀이터가 되고 급기야 성소가 된다. (도리불언 하자성혜), 나무는 뽐내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다, 푸념하지 않는다, 의연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몸을 맡긴다. 바람 불면 바람에 춤을 춘다. 자연, 자연 그 자체이다.

 

11월 첫째 주말 명륜당은 노란 황금바다에 잠겨있었다. 노란단풍이 물결처럼 반짝였다. 바람을 타고 출렁였다. 찰나의 황홀을 뽐내고 있었다. 노란 꽃비가 내린다. 천지를 노랑으로 뒤덮을 것이다. 의문이 생겼다. 왜 유림 한가운데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노랑 은행나무인가, 선비는 흰색인데... 꽃은 일년의 시작이지만 단풍은 한해의 마감이다. 은행나무 단풍은 일시에 불타올랐다가 한 순간에 진다, 한 순간에 비운다. 찬란한 비움이다. 이 찬란한 비움이 찬란한 채움을 약속한다고 본다. 그래서 유가를 상징한다고 보았을 것이다.

12월 일 년의 마지막 달, 다시 명륜당을 찾았다. 썰렁하다. 그 화려했던 노랑의 황홀은 온데간데없다. 시커먼 나무둥치만 덩그런하다.

수세기의 풍상, 뒤틀림, 시간의 궤적-시간과 공간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지문으로 박혀있다. 나무는 직립·수직의 공간의 뼈다. 나무는 땅의 일어섬, 하늘을 향한 생명의 의지고, 땅과 하늘을 잇는 가교, 수맥-물길이다. 영하 20도의 혹한에도 자맥질은 계속된다. 가냘픈 잎눈 꽃눈이 얼지 않은 것은 지하의 뜨거운 물을 끊임없이 길어 나르기 때문이다. 나무는 하늘로 솟구치는 물길; 불길이다.

제철 음식을 찾아 먹듯 세달 가까이 계속 나무를 그렸다. 온갖 요리를 즐긴 것이다. 처음 시작은 4F 흙판에 계획없이 그냥 그렸다. 흙판 위에 나무는 찰떡궁합이다. 들쭉날쭉 계속 그렸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의식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마나스(manas)식을 거쳐 아뢰야식(阿賴耶識) (무의식)으로 내려가 나도 모르는 나무의 상()를 찾아 길어 올렸다.

60여점이 쌓였다. 대부분을 한 장에 하나의 나무지만 어떤 것은 두 개, 세 개, 네 개가 모여 한점을 이룬다, 대부분 세로지만 가로로 끼어있다. 이젠 전체를 한꺼번에 모아보고 싶었다. 범죄의 구성을 짜맞추듯 큰 그림을 그려본다. 낮과 밤, 계절-가을에서 겨울로 날씨의 변화까지 그림은 다양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무도 처음엔 은행나무에서 느티나무, 팽나무로 다시 나무 일반으로 잡다하게 섞여있었다. 땅 표면으로부터 땅 속까지 흙판 자체도 변화하였다. 세로 4줄 가로 1560점의 작품이 벽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계속 그릴 것이다. 끝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화면은 매일매일 배치가 달라진다. 마치 컴퓨터 글쓰기 하듯, 게임하듯 앞뒤 좌우 상하 위치가 바뀐다. 눈에 띄는대로 가필함에 따라 화면과 화면의 관계도 수정, 보완되는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분 날, 눈이 휘뿌린 날, 진눈깨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원인 모를 외로움으로 사무친 날, 그냥 멍한 날, 그도 저도 아닌 그림이 그림을 인도한 날... 보이지 않던 그림의 相()이 나타난다. 지난날의 하루하루가 화면 위에서 어른거린다. 이 판에서 충족되지 않는 새 구상이 나오면 또 그것으로 며칠을 달린다. 바람 연작이 그렇다.

바람은 대지의 영혼이다. 들숨날숨 호흡이다. 바람은 나뭇가지 끝에서 논다. 그 떨림은 나무뿌리를 깨운다. 대지를 눈뜨게 한다.

~ 봄이 가깝다. 이젠 매화를 그릴 때다. 심매도(尋梅圖)는 새해를 맞는 나의 통과의례이다. 이번에는 배경-여백에 힘을 주었다. 삼라만상이 그렇듯 매화는 홀로 피지 않는다. 대자연이 지극정성으로 키운 합작품이다. 천지공사(天地公事). 먼저 배경은 완성하고 그 위에 매화를 심듯, 키우듯, 뿌리를 박듯, 그 힘이 솟구치듯 일필휘지로 그린다. 기운생동이 제일 강령이다. 매화꽃 한 송이는 하늘의 뜻에 따라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탄생하는 세상의 개명(開明)이요 개벽(開闢)이요 혁명이다.  

                                                                         

나는 나무다. 나무로 산지 오래다. 나무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나무가 춤추면 나도 춤춘다. 두 발 끝에서부터 손끝, 머리끝까지 나무처럼 자연을 호흡하고 세계를 숨쉬며 깊이깊이 뿌리내리고 여기 이곳에 살고 싶다. 수직으로 곧추서서 흔들림없이 세상을 지켜보겠다

 

임옥상 林玉相 b. 1950

KOR _ oksanglim.com  /  ENG _ oksanglim.net

 

임옥상은 195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광주교대, 전주대 미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지냈다.

아프리카 현대사’, In the spirit of Resistance(NY), ‘바람 일다’, 'The wind rises(LA)', '흙 Heurk(Hongkong)' 등 개인전 21회, '십이월전', '제3그룹전','현실과 발언 동인'과 광주/베니스 비엔날레, 시드니 트리엔날레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현재 (사)세계문자연구소 대표이사, (사)자문밖문화포럼과 (사)흙과 도시에서 부이사, 임옥상미술연구소 대표이다.

 

현          임옥상미술연구소 소장

1986      앙굴렘 미술학교 졸업, 앙굴렘, 프랑스

197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석사, 서울

197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학사, 서울

1950       충남 부여 출생

 

개인전 (2021.02 기준 24회)

2021     나는 나무다, 갤러리나우, 서울

2019       흙의 소리, 흙의 침묵, Art Students League of Denver, Colorado USA

  흙 Heurk, SA+ H queen’s, Hongkong

2017       The Wind Rises, CMay Gallery, LA. USA

             바람 일다,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5       무릉무등, 메이홀, 광주

2013         임옥상 초대전, 노원문화예술회관, 서울         

2011      토탈 아트 : 물, 불, 철, 살, 흙,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5       Lim Ok-Sang, Gallery Hana, Germany

2003      한바람 임옥상의 가을이야기, 갤러리편도나무, 서울

2002      철기시대 이후를 생각하다,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1       물과 불의 노래, 코리아아트갤러리, 부산

2000       철의 시대 · 흙의 소리, 가나아트센터, 서울

             DMZ Lim Ok-Sang, Orchard Gallery, Derry. United Kingdom

1997       In the spirit of Resistance Lim Ok-Sang, Alternative Museum, New York. USA

             임옥상 : 역사의 징검다리, 가나화랑, 서울

1995       일어서는 땅, 가나화랑, 서울

Rising Land, Galerie Gana-Beaubourg, Paris. France

1991       임옥상 회화 초대전, 호암갤러리, 서울

1990       우리시대의 풍경, 온다라미술관, 전주

1988       임옥상 작품전, 온다라미술관, 전주

1988       아프리카 현대사, 가나아트갤러리, 서울

1984       한바람 임옥상, 서울미술관, 서울

1981       한바람,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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