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의 의미, 화가 배강조 인터뷰
‘초월’의 의미, 화가 배강조 인터뷰
  • Garam Choi
  • 승인 2017.01.1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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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배강조

2017년. 새해가 밝았다. 참 다사다난 했던 2016년이었다. 무언가 갑작스럽게 일이 닥쳐져서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결말로 그렇게 새해를 맞이한 기분이다. 기자 개인이 생각하기로는 너무 암울하고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문득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본 전시회가 떠오른다. 사실 그를 다루기 위해 원고 준비를 했지만, 여러 일이 겹쳐져서 시일이 많이 늦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잊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때에 그 전시회의 작가의 작품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또오른 것이다. 그것이 ‘초월’이다.
 

 


초월.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철학적 의미로는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 스콜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 들지 않는 존재, 신(神), 선(善)이라는 개념의 본연의 자세를 가리킨다. 칸트 철학에서는 초감성적인 것이 우리들의 경험에서 독립하는 일을 가리키며, 실존 철학에서는 무자각적인 일상적 존재의 입장에서 철학적 자각의 입장으로 넘어서 나아가는 일을 뜻한다. 물론 이러한 뜻도 어느 정도 성립되지만 전시회 주최 작가인 배강조 씨가 말하는 ‘초월’의 의미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관찰자로서의 시선’이다. 관찰의 대상은 어떤 범주에 한정되어지지 않으며, 자기 자신까지 포함시킨다. 마치 거울을 보듯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에 대한 소망 역시 관찰하고 작가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통해 재해석 하며, 문장을 엮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또는 어떤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나간다.

 

 

 

 

 


배강조 작가는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화법을 사용해가면서도 사실적이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이미지들을 만들어 냈다. 그가 사용한 이미지들은 고통적으로 우리가 그 동안의 역사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이들의 이미지들이었다. 빈 라덴에서 오바마, 그리고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전쟁이라는 역사 흐름 중심에 있던 이들이었다. 작가는 그런 가장 충격적이던 사건들(세월호 사건을 비롯한)을 통해 고뇌를 거듭하면서 좀 더 폭 넓게 본질을 탐구 했고,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자기자신의 투영과 함께 고찰을 거듭하였다. 그러면서 선과 악으로 갈라서서 대립하는 그들의 이해관계가 무상한 것임을 느끼고, 평화의 본래의 의미, 그리고 지속적으로 폭발하는 대립양상에 대해 ‘초월’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현상에 자기 자신을 대입시켜보았다. 그러면서 작가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생겨나는 괴리감이 가져오는 아우라와 혼합되었다. 마치 구름 속을 해치면서 보여지는 공간의 이미지와 같아졌다.

 

 

 

 

 


작가는 이에 대해 “우리들에게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충격은 기묘한 아우라를 풍기는데, 여기서 우리네 삶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인식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데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명 네거티브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신기루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충격으로 인한 떨림 뿐 그 어떤 것도 형체를 나타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마다 받아들인 사람에 따라 다른 아우라로 다시 태어나지, 사건이나 인물이 재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에 대해 항상 제 3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이나 그것을 증거로 하는 이미지들이 너무 자극적이고 강해서 우리에게 충격은 네거티브적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러한 충격적인 사건을 허무한 것이고 무상한 것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분명 회의주의적인, 나르시즘적인 사람으로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분명하다. 분명 그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겪은 이들에게는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상흔으로 남는다. 그런데 상흔을 영원히 남겨둔채, 고통스럽게 남은 삶의 시간을 살아갈 수는 없지 않는가? 나 역시 그런 충격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웠다. 그 사건을 받아들인 개인으로서는 어떻든 지간에 ‘내일’이 존재한다. 그리고 살아있기 때문에 ‘내일’을 반드시 살아야 한다. 결국 결론에 도달하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러한 초월을 이루기 위한 자신만의 표현방법을 택했고, 만들어 냈다.”고 이야기 한다.
작가는 ‘내일’, 즉 ‘미래’를 위해 성찰하는 의식으로서 작품작업을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또, “자신 역시 유년기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감정적 동요가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변하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도망칠 곳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결국 ‘극복’하는 것 밖에는 없다. 잊는 것이 답은 절대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넘나들며, 본질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 답이다. 그것이 ‘초월’이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자세가 갖춰져야 미래를 내다보는 해안이 생겨난다고 한다.

 

 

 

 

 



미래. 너무나도 먼 것이라고 여겨져만 왔다. 하지만 다른 말로 그것은 ‘내일’, 짧게는 몇분 몇초 뒤에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은 몇몇 충격적인 사건들로 인해 시간이 정지되어져 있는 지도 모른다. 개별적으로는 사사로운 어떤 사건들로 인해 그러는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들에게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만큼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역시 중요하다. 작가는 그러한 점을 지적하고 자신만의 표현방법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중요한 어떤 것을 하나씩 잊고 지나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식 밖의 일들,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죽어간 이들을 위해 다음 세대가 다시는 그러한 일들을 겪지 않도록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인 우리가 가져야하는 ‘초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내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지금일 것이다. 그리고 기자 개인을 포함한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하고 있는 일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의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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