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효용 개인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엄효용 개인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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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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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0. 5. 20(수) ~ 6. 2(화)
▪오 프 닝 : 2020. 5. 20(수) PM 5:30
▪관람시간 : AM 10:00 ~ PM 6:00
▪전시장소 : 희수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1-, 2~3층)
▪연 락 처 : 02-737-8869

작가 엄효용의 사진은 수채화적인 회화적 질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은 쉽게 기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는 사람들의 감상이 주로 사진의 표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맴돌게 했다. 그러니 엄효용의 사진은 상대적으로 그 외면에 비해 내면이 주목 받지 못했다. 사실 작품이란 표면보다는 이면을, 철학보다는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지난날 엄효용은 인공의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진실에 대해 목말랐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위치시켜 세계의 실체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세계는 너무 넓었다. 그는 이해 가능한 세계의 일부를 파헤쳐 들어갔고, 부분적인 세계를 통해 세계 전체를 더듬어 보려 애썼다. 엄효용은 기하학적이고 균일한 수치가 존재하는 사물을 분석해서 안과 밖, 앞과 뒤, 겉과 속으로 구분 지었다. 그렇게 해체시킨 사물의 면면을 이미지로 포착하고 각각의 이미지에서 발생한 상반되는 개념들을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을 사용했다. 다시 한데 모아 중첩시킨 이미지들 위로 사물의 진실한 얼굴이 떠오르길 기대하면서……. 그러나 부분적이고 모순되는 진실을 켜켜이 쌓는다고 해서 세계의 실체가 더 분명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분적인 진실을 중첩시킬수록, 세계의 실체는 더욱 모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효용은 머리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춘다. 아마도 그는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한계 상황이라 부른 지점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리고 한점으로 수렴되는 협소한 사물에서 광활한 자연으로 눈을 돌린다.

 

언젠가부터 엄효용은 모순되는 개념들을 한자리에 모으려 하지 않는다. 근자에 그는 동일한 개념을 지닌 동질의 이미지들을 담백하게 여러 번 겹쳐 올린다. 과거에는 상반되는 개념들을 한자리에서 대립시키기 위해 이미지들을 겹쳤다면, 최근에는 시간 안에 분열된 대상을 한자리에서 화해시키기 위해 이미지들을 겹친다. 여전히 이미지들을 중첩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사진은 예전이나 요즘이나 같은 맥락 안에 있는 듯하지만, 기법에 내재된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것은 그의 삶이 변화했다는 증거이다. 이제 엄효용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이 단지 세계의 일부이며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는 이 세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아껴 주고 싶어 한다. 우리가 엄효용의 사진 표면에서 느끼는 포근함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부터 번져 오는 것이다. 비로소 그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편안히 존재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자연을 불가해한 신비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에게 더 이상 분석의 대상이 아닌 세계는, 모호한 가운데 있는 그대로 분명하다.

 

오늘날 엄효용은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나무 아래 서서 물결무늬로 일렁이는 햇살과 그림자의 춤사위에 시선을 던지며 조용히 바람의 말을 들을 줄 안다. 마른 풀들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를 듣고 키 작은 들꽃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자주 지나는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이 그의 눈에는 비범해 보인다. 그도 때론 놀랍고 눈부신 풍경 앞에 서기 위해 멀리 떠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에 머물며 그 평범함을 가치 있게 여긴다. 엄효용은 끝내 세계의 실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손을 뻗어 진실을 추구할 수 있을 뿐, 마지막까지 진실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가 깨달음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엄효용은 사랑으로 세계를 짐작하고 있다. 사랑으로 만나는 매일의 세계를 그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기에 엄효용은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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