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협의 장미시대Ⅱ
김순협의 장미시대Ⅱ
  • 김선일 기자
  • 승인 2021.07.06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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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7(수) - 7. 18(일)
토포하우스 제3전시실

장미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화가들이 사용하는 가장 흔한 소재 중의 하나이다이 평범한 소재를 택할 때는 나름 차별화된 기술과 해석의 자신감이 없을 때는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다.

 

너희 부모가 혹은 친구가 (너희 의지와는 상관없이장미를 그려 달라고 하면 그리겠니?”

1980년대 미술대학 실기 시간 강사 S씨가 물었다그녀의 위세에 눌려 모두 절대 그리지 않겠다고 묵음으로 대답했다. 전위 미술을 한다는 의미는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하고 이에 따른 소통의 부재는 예술가의 몫은 아니라는 도도한 태도였다.

예술가의 숙명인 양 현실과 단절하고 타협하는 것을 이단(異端)인 양 재단하고 각자의 에고(ego)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왔다이 프로그래밍이 된 것이 내 것 인양 각인되어 너무도 끈질기게 내 삶을 따라다녔음을 부인할 수 없다에고의 지배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50대 중반이 되고 나서야 나의 예술적 관심은 나 자신의 에고에서 벗어나 이웃과의 교감으로 관심이 옮아갔다. 이것은 나이가 들면서 세대와 세대, 그리고 시대와 시대를 바라보는 성숙한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나 자신만의 독립된 에고로 인식되었던 것이 외부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화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허영심 많은 임금은 노련한 재단사와 대신들에의 해 철저히 기만당하고 이들의 권위에 눌려 일반 백성들도 자신의 눈을 의심치 않고 입을 다물었다. 벌거숭이 임금님 행차라는 것을 알게 한 것은 한 용기 있고 순수한 소년의 지적이었다. 있는 그대로 어떤 선입견 없이 사실과 사물을 대하는 것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애고를 놓아버림으로 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에고를 벗어난 자리에서 행복과 만족 감사의 기도가 시작되었다내 마음의 변화는 내 주위의 사물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장미는 장미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 구상할 때도 즐겁고 하는 과정도 즐겁고, 또 완성된 것도 즐거운 작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즐거움의 공유야말로 개인으로서의 미술가나 이웃들이 미술을 사랑하고 가꾸어가는 이유라 생각된다. 장미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장미는 마음을 전하는 꽃이기에 한 송이 아닌 백 송이 장미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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