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순간 사이
영원과 순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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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2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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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작가 : 김세중 (b.1977, Kim, Se-joong)
□ 기 간 : 2022년 2월 8일(화) ~ 2월 26일(토)
□ 장 소 : 김세중미술관 제2전시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70길35)

작가 김세중은 잘 그린다. 정말 잘 그린다. 매끈한 대리석은 그자체로 대리석이고, 세월의 때가 묻은청동은 누가 봐도 청동이다. 작업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돌멩이’(조약돌)도 그렇고, 다소 각주 같아 지금은 좀처럼 묘사하지 않는 새나 꽃 등의 자연물도 온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인지된다. 매우 생생하여 실제적 실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1)
하지만 잘 그리는 것과 의미 있는 작품은 다르다. 아마 전자에 국한된 경우였다면 김세중의 작업들은가치적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의 작품은 대상의 실재성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표상 외적인, 겉으로 나타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부유(浮遊)하고 있기에 현재의 주목도 또한 유지될 수 있었다

 

우선 김세중 회화의 미술사적 연관성을 들여다보자. 만지고 싶을 정도이니 ‘촉각화 된 시각의 회화적 구현’이라 해도 무방한 그의 빼어난 사실주의적 그림 탓에 그는 곧잘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2) 작가로 분류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다.
하이퍼리얼리즘이란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미국에서 출발한 회화 및 조각의 새로운 경향을가리킨다. 영국에서 발아해 미국에서 꽃을 피운 팝아트(pop art)가 점차 쇠퇴해질 무렵에 등장했다. 극도의 사실적 기법 아래 주관을 완전히 배격한 중립적 입장에서 기술되며, 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인 표현을특징으로 한다.
작가 김세중의 작업 역시 우리 가까이 있는 광경들을 일순간 정지시켜 강조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여타하이퍼리얼리스트(hyperrealist)와 닮은꼴이 있다. 지나치게 정확하고 세밀하며, 사진(혹은 도구)을 이용한표현이라는 장르적 특성에서도 언뜻 동일한 분모를 엿본다.
그러나 김세중의 작업은 현실 속 일상의 소재를 차용한 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면서도 ‘비현실적풍경’이라는 아이러니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장면을 건조하게 반영하는 극사실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극단적인 묘사로 인한 시각적 경이로움이 존재함에도 ‘사물의 이면’을 충동케 하는 이데아(idea)3)적 성격과 본질에 관한 경험적 태도가 동시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김세중의 작품은 차라리‘초현실적(surreal)’이라는 게 옳다.
특히 연극적 요소를 통한 불변의 원형이라는 측면은 그리스식 미술양식의 원류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음에도 현실적인 대상을 관찰하고 외형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포함해 그 ‘사물자체와 직면’하는 조형 심리적 영역에선 통상적인 극사실주의와 변별력을 지닌다. 더구나 존재를 통한 꿈과 환상, 상상의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본질을 다루기에 엄밀히 말하면 초현실주의(surrealism)4)와도 간극이 있다.
‘일상에서의 경험’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팝아트(pop art)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계보만 놓고 보자면 그른 시각은 아니다.5) 사실 주변의 일상을, 대중적 속성을 미술이라는 명제 아래 수용한 하이퍼리얼리즘은 미술사적으로 팝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이퍼리얼리스트들은 팝아트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일 매일의 생활, 즉 우리 눈앞에 항상 존재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화폭에 옮겼다.6)
하지만 엄밀히 말해 팝아트와 하이퍼리얼리즘 간에도 차이가 있다. 대량소비 및 대량생산 체제와 미디어의 상징성에 열광했던 팝아트와 달리 하이퍼리얼리즘은 외계의 실재를 파악하는 인식태도에서부터 사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요소들이 각각의 작품마다 만발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여기서 가장 가치적인 건 ‘접촉’이다. “사물과 나의 접촉, 사물과 사물의 접촉, 세계와 나의 접촉이라는존재론적 사건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것”(김세중)이면서 외적 모방이 아닌, 물질적인 세계를 초월한, 그배후에 존재하는 영원한 대상에 대한 감각적·지각적·감성적 접촉이 키워드인 셈이다. 한국의 위대한 조각가로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김세중 작가(1928~1986)와의 접촉도 그 일부이다.물론 리얼리즘은 접촉의 단계로 가기 위한 일종의 경험으로부터의 문(門)이고(작가 역시 그의 박사논문에 “조약돌과 조각상은 나의 경험을 의미화 하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썼다.), 김세중의 회화는 그 문 앞으로 대중을 유도하기 위한 시각적 수단이다.
흥미롭게도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안엔 “실재라는 명징함의 가능성”(김세중)인 인간 삶과 등치된 자연과 영원성과 꿈이 들어 있다. 그것들과 조우하는 순간이 바로 초월적 경험 안에서의 리얼이고, 리얼함의 뒤에 숨겨져 있는 이면이란 환영(幻影)을 거세한, 비로소 영원으로 다가설 수 있는 존재 본질의 모습이다.

 

 

 

 

 

 

 

 

 

 

작가에게 존재란 어떠한 실재적 술어가 아니다. 칸트(Immanuel Kant)의 정의처럼 그것은 사물의 개념에보탤 수 있는 어떤 것의 개념이 아니며, 단지 그 자체에서의 사물의 정립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석상에 담긴 진짜 이야기(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가 작품의 중심은 아니다. 각각의 조각에새겨진 상징이나 의미와는 무관하다. 이미 조약돌에서 파악된바 있듯 그의 모든 작품은 자연(Nature)과시간의 굴레를 품은 영겹의 영원성(Eternity), 이전과 다른 이면의 세계를 열람케 하는 꿈(Dream)이라는커다란 우산 아래 놓이지만, 실질적이거나 개별적인 스토리와는 별 상관없다는 것이다.11) 비록 신화의소구인 조각상을 통해 탈-현세를 증명하고 신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영원한 세계, 꿈의 세계를 꿈꿀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론 존재본질을 어떻게 회화적으로 번역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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