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화 초대전 그리움은 현재
이영화 초대전 그리움은 현재
  • 황임규 기자
  • 승인 2022.09.17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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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9.13- 9.27
무늬와 공간 갤러리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302 인앤인오피스빌딩 8층
전시 관람 시간: 10:00~18:00 (일요일, 공휴일 휴관)
전시 문의 : (☎) 02-588-2281, (E-mail) bonebank@hitel.net

남겨진 정물

 

-어머니-

내 친정어머니는 97세이다

고향을, 부모님을, 형제를 이북에 두고,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오셨다.

그 후 내리 5명의 딸들을 낳으셨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외로운 우리 형편에 괜찮다 하셨단다.

의지할 곳 없이 사신 두 분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셨을 까?

내 어릴 적 가끔 하시던 내 어머니의 “내가 살아온 길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낸다면 12권도 모자라” 하시던 말씀은 그때는 그 뜻을 알 길 없었지만 지금은 가슴을 저며온다.

 

내 시어머니는 살아 계시다면 87세이시다.

70세 생신을 맞으시고, 봄 꽃이 피려고 하는 4월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다정한 음성, 아름다운 미모의 현대식 시어머니셨다.

입 크게 벌려 왕 만두를 드시다 눈이 마주쳐 웃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어머니! 꿈에 본 듯, 한 번 다녀 가시길…

저도 이제 흰머리가 새치가 아닌 나이가 되어갑니다.

 

 

 

 

 

 

나의 또 다른 어머니는 대학 은사이기도 한 대모님이시다.

대학교에서 정년 퇴직하신 전공분야의 존경 받는 학자이시기도 하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감성은 소녀이지만 

현실은 여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강하고, 인내하는 우리네 어머니이시다.

잘 찾아 뵙기는 커녕 안부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니, 죄송하기 짝이 없다.

대부, 대모님 건강하시길 마음으로만 기도하는 불효녀이다.

 

-촬영하면서-

장롱 깊이, 어떤 것은 가까이에, 박스 안, 창고에 있던 그것들을 찾아내는 것은 

나의 추억과 기억이 필요했다.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한 곳으로 모았다.

하나 하나 만지면서, 조명을 비추면서 셔터를 누르면서, …

이런 행동을 반복하며 난 그 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기억의 끝을 잡고 그 순간으로 떠나는 시간들이었다.

떨림도 있었다.

주고 받는 시선은 애달프고, 희미해진 기억의 물결이 일었다.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다-

딸이란, 며느리란, 엄마란, 여자란

이 단어들은 떠 오르기만 해도 가슴이 저며오며 눈물이 핑 돈다.

 

인생이란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

기억 말고는 그 쌓아놓은 시간을 보여주는 손 때묻은, 늘 곁에 있던 물건들이 아닐까?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깊은 시간을, 다 느낄 수도 없는 그들의 순간들!

무슨 말을,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까?

유심히 살펴보는 데

우선 그 분들의 옅은 미소가 먼저 떠오른다.

옥 반지 꺼내어 이 손가락 저 손가락 끼워보기를 하다가 겨우 새끼 손가락에 끼우면서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본다.

 

이번 사진들은 이 세상에 나를 남겨놓은 그분들을 위한 나의 사랑이다.

시간을 기억을 더듬어 촬영하면서 잊고 있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재미지기도 하다.

째깍째깍 초침소리와 함께 

옛 생각에 묻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흩날린다.

이번에 발표하지 못한 그 추억을 다음으로 기약해 본다.

하지만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 기억이란 사랑보다 슬플 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세상을 마치고 갈 때 무엇을 남기게 될까?

나도 이제 나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뭐가 있나 주변을 살펴본다.

내 아이들이 그것을 보며 나를, 나의 시간을 함께 할 그것들을…

                               

 

무늬와공간 대표 임창준

이영화 작가는 작고하신 시어머님께서 남기신 유품들, 그리고 친어머님과 대모님의 소장품들을 정물 사진으로 담았다. 작가는 본 작업에서 주제를 거의 제거하면서 대상의 객관적 모양과 배열을 우선시 하였으며, 정물들의 구도는 극도로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이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은 모양, 색상 및 질감들이 서로 묘하게 어울리며 우리의 기억세포들을 자극한다. 평범한 사물들의 단순한 공간 배열인데도 그들은 강렬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푼크툼(punctum)과 함께 스투디움(studium)의 개념을 정의하였다. 스투디움이란 사진을 볼 때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공통된 느낌을 갖는 것, 작가가 의도한 바를 관객이 작가와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다.

푼크툼은 「찌름」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 「punctionem」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강한 인상이나 감정을 동반하여, 사진 감상시 관객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똑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추정ㆍ해석할 수 있는 의미나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객들은 작가 이영화의 사진 속 물품들을 보며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것은 푼크툼인가, 스투디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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