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웅 사진전 고맙다 안나야
김호웅 사진전 고맙다 안나야
  • 포토저널
  • 승인 2022.11.18 1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시 기간 2022년 11월 22일(화) ~12월 4일(일)
오 프 닝 11월 22일(화) 6시
사진위주 류가헌
문 의Tel. 02)720-2010 E-mail. ryugaheon@naver.com

 

진한 봄꽃 향기들이 가득했던 어느날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까?”

듣자마자 알아차렸다.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 얼굴 보고 나면 듣게 될 이야기가 아마도 내가 오래도록 듣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일 것임을.

봄꽃을 품고 피어오른 이야기들은 여름과 가을을 거쳐 숙성된 뒤 오늘 <고맙다 안나야>라는 제목의 전시회로 펼쳐지고 있다. ‘잃은 것이 많은사람인 그는 빈자리 모두를 꼬박 채어낸 양 얼굴 가득 배시시 웃음을 품었다. 그 웃음이 맑고 따사롭다. 여전히 말은 적고 밭은 숫기는 변함이 없는데 어딘가 모르게 가볍고 싱싱한 모습이다. 길게 흐트러진 백발의 머리칼도 나이 든 티 없이 상큼하다. 느릿한 걸음새도 그대로요 좁고 마른 어깨도 그대로인데 분명 단단히 채워진 어떤 기운이 있다. 혹여 툭 건들면 무너질까 싶은 염려는 되려 내 새가슴 탓이다. 그가 무엇을 잃었고 이로 인해 정녕 버거운 시간을 보내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든 부질없는 아우성이다. 분명한 것은 형은 이전과는 다르게 참 괜찮아 보인다.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른다. 호웅이 형.

33년 경력의 현역 사진기자이고 선배이면서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 이다.

호웅이 형과 고인이 된 지 5년 된 그의 딸 안나가 함께 펼쳐놓은 이 특별한 상찬의 자리를 설명하기란 우선 쉽지가 않다. 하여 조심스럽게나마 먼저 형의 아픈 가슴을 들추고자 한다. 지난 2013년 겨울, 형은 사랑하는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말았다. 석간신문의 사진기자로 늘 새벽 출근이 일상이었기에 아내를 지켜줄 수 없었다.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애써 눈물을 감춘 형은 두 딸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20181130. 자신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큰딸 안나가 유학 중이던 미국 현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숨을 내려놓고 말았다. 호웅이 형에게 이 소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몸을 추슬러 바다 건너 안나를 찾아간 호웅이 형은 안나의 친구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준비한 정중한 추모의 자리에 서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 안나를 품고 돌아와, 부인의 몸을 누였던 그 자리에서 다시 큰딸의 장례식을 치렀다. 막내딸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형의 시선은 자꾸 허공 어딘가를 겉돌았다. 그 두 자리 모두 구석 한 귀퉁이에 묵묵히 앉아있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잃은 형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형에게 지난 10년 그리고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이 전시를 절감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호웅이 형 홀로 감당한 그 겹겹의 시간을 상상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상상은 연민을 동반한 위로의 시간일 필요는 없다. 형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애초부터 아니었기에 그 겹겹의 시간 내내 고요히 침묵했다. 무언의 세월이었음에도 형에게는 그 시간이 무너져 주저앉은 침잠의 나락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 고통의 바닥을 훑어가며 견디는 시간이었으며 상승의 때를 스스로 택한 여정이었다. 언젠가부터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범고래처럼 형은 끊임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택한 유영지는 오래전부터 품을 들였던 바다였다. 국내외를 특정하지 않고 찾아간 바다는 그의 안식처가 되기 시작했다.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끝없이 들고 또 들었다.

바다 안에 들어가면 너무 편안해. 아주 고요하거든. 내 숨에서 나오는 버블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세상이 다 내 세상 같지. 오롯이 나 혼자 떠다니면서 그 고요에 나를 맡기게 돼. 말할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어. 그게 너무 좋거든. 진짜 푸근해서 한겨울이 아니면 언제나 들어가지. 너도 해봐.”

바다는 늘 줄 만큼만 줘. 파도가 너무 험하면 들어오지 말라는 거거든.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거지. 신기한 게 내가 가고 싶을 때면 항상 허락을 해주는 거 같아. 그렇게 들어가면 바다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 들지. 아내랑 큰딸을 안았을 때랑 같아.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게 돼. (의 슬픔)조차 잊어버리게 되더라.”

잃었다고 여겼던 그 따사로운 품을 다시 느끼게 해준 바다는 제주도 문섬이다. 다이버들의 성지로 불리는 문섬은 작은 새끼 섬을 하나 품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2년 동안 새끼 품은 문섬을 수도 없이 찾아 그 바다에 몸을 들였다. 처음엔 형형색색의 연산호 무리에 시선을 모았지만 우연히 산란 중인 문어를 보게 되면서 한순간 넋을 잃었다고 형은 말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알을 지키는 모습은 사람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최대한 숨을 참아가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며칠 지나 다시 들어가 보니 새끼손톱보다 작은 하얀 알 속에 몸통이 보이고 눈도 보이기 시작했다. 문어만이 아니었다. 흰동가리, 자리돔, 줄도화돔 등등. 수많은 바닷속 생물들이 알을 낳고 온 정성을 다해 품어 살피는 그 광경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꼬박 2년 동안 몰입에 몰입을 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큰딸 안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자신이 품었던 안나를. 이 과정은 잃은 것이 많은 형이 스스로 채워내기 시작한 자기회복의 첫걸음이자 신호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자기회복의 동기는 잃어버린 딸 안나다.

지난해 가을 형의 꿈에 안나가 나타났다. 알 듯 모를 듯한 안나의 손짓에 잠을 깬 형은 다음 날 바로 아내와 안나의 안식처인 용산 베다니의 집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유리 앞에 붙여둔 안나의 사진이 사라진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꿈에 안나가 나타난 것일까. 형은 안나의 흔적들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미국 엔듀르스 유니버스티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던 안나는 성악을 부전공으로 할 만큼 노래를 잘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깊고 소탈했다. 인종을 떠나 많은 친구들이 안나를 좋아했다. 볼리비아의 가난한 소년에게 오래도록 정기후원을 하기도 했다. 다재다능한 그러면서도 타인을 위한 배려와 존중이 몸에 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형은 안나가 남긴 유품 속에 있던 그림들이 유독 눈에 밟혔다. 생전 안나는 그날그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스케치북에 일기장처럼 남겼다고 한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형은 다시 안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꿈과 소망, 삶의 지향성들을 아빠가 아닌 안나 자체가 되어 몰두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이미 펼쳐낸 것이 너무도 많은 딸이었다. 안나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꽃처럼 튀어 올랐다.

안나가 너무 고마워. 아빠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잖아. 문섬에 갈 때마다 안나를 만나는 거와 다름이 없거든. 그러니 신이 나는 거지. 산란 중인 생물들을 사진 찍을 때면 완전히 몰입돼서 너무 좋아. 알이 부화해서 꼬리를 젓기 시작하는데 안나 어릴 때 보던 모습이랑 똑 같은거야. 아주 행복했지.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말이야. 내가 이렇게 들뜨는 순간이 다시 오다니 그게 너무 신기해.”

김호웅 사진전 <고맙다 안나야>는 아빠와 딸이 다시 나누는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손길과 손길이 다시 만난 회복의 밑그림이다. 안나가 남기고 간 손때 묻은 스케치북과 아빠가 숨을 죽이며 15미터 아래 바다에서 품은 시선이 한데 모여 두 사람이 다시 사랑의 대화를 이룬 상찬의 잔칫상이다. 아빠와 안나가 다시 만나 나눈 속 깊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치유와 회복의 신고식이다. 따사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딸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과 다시 세상을 떠날 때, 그 곁에 없었다고 자신을 질책하던 아빠는 너를 떠나보내지 않았다고 너로 인해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한다.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리는 김호웅사진전은 2층 전시1관 문이 열리면서 접하게 되는 안나의 아기 시절 사진으로 시작한다. 안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뒤를 돌아 3면의 벽에는 성장하는 안나의 어느 날들을 접하게 된다. 온 우주를 대하듯 딸을 바라보던 아빠의 시선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 뒤를 이어 안나의 그림일기들이 펼쳐진다. 여러 권의 스케치북에서 고른 20여 점의 그림들은 아빠가 안나를 상상하면서 일부러 선택한 원본 그림들이다. 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안나 앞에는 친구들이, 풍경들이, 세상과 수많은 우주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2층 마지막 사진은 안나의 대학 입학 시기에 찍은 증명사진이다. 이 사진은 125일 대학 강당에서 열린 추모행사를 위해 학교 관계자와 동기생들이 직접 준비해 주었다. 단상 위에 걸어놓았던 액자를 호웅이 형이 직접 가지고 왔다. 지하층으로 내려오면 호웅이 형이 문섬 아래 바다에서 직접 촬영한 수중사진들 50여 점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어 주욱 펼쳐진다. 바다 수면을 아래위로 가른 채 새끼 섬의 형상이 보이는 첫 사진은 호웅이 형이 안나를 보듯 공들여 촬영한 사진이다. 이어 문섬 아래 떼를 이룬 생물들을 담은 바다 풍경들이 펼쳐진다. 아늑한 품을 느끼듯이 바라볼 수 있다. 문섬은 세계적으로도 소문날 만큼 아름다운 연산호들이 가득하다. 형형색색의 현란한 색깔 잔치를 접할 수 있는 풍경들이 여럿 이어진다. 그리고 산란 중인 바다생물들의 고귀한 순간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런 풍경들은 예의 수중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면면들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알에서 깨어 아주 작은 몸짓으로 바다에 숨을 틔워가는 어린 생명들을 감동적으로 만나게 된다. 부화와 탄생의 이 형상들은 숨은그림 찾듯 곱씹어 봐야 제대로 보인다.

전시장 전체에 공간과 여백을 두어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과 그림들 모두 때와 장소, 상황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일부러 개입시키지 않았다. 또한 이 전시는 전시회라는 문화적 형태를 취하면서도 사진의 기록적 의미, 예술성 승화 등의 미적가치를 주장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시, 해석, 전제, 담론화 등에 대한 기대도 내세우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은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아빠와 딸이 나눈 이별 속 재회의 시간을 상상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더 크게 갖는다. 이 전시는 치유와 회복의 여정으로 자신의 지난 아픔을 승화해 낸 어느 아빠의 소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내년 3월 정년퇴임을 앞둔 사진기자로서 이 전시는 아마도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자신의 고백과 암시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없이 바다에 들게 되면서 알게 된 늙은 해녀들과 함께 뭔가를 이루며 살고 싶다고 한다. 자세한 얘기는 말꼬리를 살짝 접는 것을 보니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들을 모아 내게 얼굴 보자는 연락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들기도 한다. 기쁜 일이다. 형이 다시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심이 걷힌 형의 얼굴을 보니 주름도 좀 펴진 듯 보인다. 그래서 호웅이 형은 오늘 고맙다 안나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이 전시에 내걸린 모든 바닷속 정경과 별도로 제작된 탁상달력들이 많은 이들의 손에 들려 실려가기를 기대한다. 판매되는 모든 수익금은 부모를 잃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청소년들을 위해 전액 기탁될 예정이다. 아마 하늘에 있는 안나가 아빠에게 부탁한 모양이다.

 

사진치유자 임종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