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호, 빈티지, 한 컷 반
최광호, 빈티지, 한 컷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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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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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간/ 2024년 2월 20일(화) ~ 3월 10일(일)
오프닝/ 2월 23일 금요일 6시
작가와의 만남 / 2월 23일 금요일 4시
장소/ 사진위주 류가헌 종로구 청운동 113-3(자하문로 106

사진가 최광호의 빈티지 사진전이 열린다.

1986년 일본 유학 중이던 서른 살의 최광호가 실험적 형식을 시도한 <한 컷 반>1978년 스무 살 무렵의 자의식이 반영된 <빛에 대한 반항> 두 사진 시리즈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여지는 이 빈티지 사진들은, 늘 새로운 전위작업으로 우리나라 사진계에서 데뚝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작가의 시원을 볼 수 있는 작업들이다.

1986<한 컷 반>

 

한 장의 사진 안에, 완전한 한 컷과 잘린 반 컷이 함께다. 한 컷 안에 묶인 개를 바라보는 시선 속으로, 반 컷에 활짝 핀 수국꽃이 틈입한다. 한 컷 안에 찢긴 그물의 구멍과 반 컷 속 산과 하늘 사이의 허공이 등가로 나란하다. 겨우 반 컷이 더해졌을 뿐인데, 한 컷이 지니고 있던 정의 가능한 맥락이 예측 불허로 뒤바뀐다. 한 컷과 반 컷, 완전과 불완전, 연결과 대비로, 한 장의 사진이 품은 내연이 사진 프레임 밖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한 컷 반>을 처음 시도한 것은 일본 열도의 작은 섬 카미시마(神島)’에서였다. 당시 오사카 예술대학교 사진과에 재학 중이었고 이듬해 동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사진 전공을 앞두고 있었지만, 사진적 호기심이 가득했던 그는 기존의 표현 방식 너머가 궁금했다. ‘신이 사는 섬이라 불리는 섬 구석구석을 다니며 풍경과 인물, 사물 한 컷을 찍고 그것을 기억했다가 연결되는 다른 이미지를 찍어 한 컷 반으로 인화했다. 어두운 암실에서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한 컷과 반 컷으로 분리된 채 연결되자, 단조로운 실재의 재현이 다층적인 의미와 해석으로 변주되어 떠올랐다.

사진을 넘어 뭔가 다른 세계로 간다는 느낌을 그때 받았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개인전 50회 국내외 기획전과 단체전을 포함하면 총 160여 회의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사진과 삶이 하나인 사진가’ ‘한국 사진계에서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최광호다.

자신의 몸을 감광 오브제로 사용한 포토그램’, 빛의 파장과 발색제를 이용한 포토케미컬페인팅’, 젤라틴실버프린트의 은을 녹슬게 하여 금속성을 부여한 최광호타입프린트’, 필름을 오리거나 인화물에 구멍을 뚫어 사진의 경계를 허문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보여준 숱한 실험과 미학적 탐구의 처음에 <한 컷 반>이 있었던 것이다.

1978<빛에 대한 반항>

()은 하나님만 주는 것이 아니고 나도 빛을 준다.’

최광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을 시작해 갓 스무 살을 넘긴 1977년에 <심상일기>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위의 문장은 그런 그가 1978년에 8*10 크기의 종이에 큼지막한 글씨로 쓴 메모다. 사진과 삶이 하나로 밀착되기 시작한 무렵 이 청년 사진가의 자의식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메모를 시작으로, 먼저 태양을 다중촬영하여 한 장의 사진 안에 여러 개 태양을 창조한 청년 광호는 한 손에 자신만의 빛(스트로보 조명)을 들고 역광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인물과 사물, 풍경들에 정면으로 빛을 투척함으로써 대상들을 드러냈다. 태양을 등진 노인은 최광호의 빛에 의해 태양보다 밝게 빛나고, 어둠에 묻힌 사물들은 오직 최광호가 빛을 비추었을 때만이 제 존재를 드러낸다. 이후세대 사진가들에게 즐겨 사용되는 이 기법을, 반세기 전에 시도해 한 시리즈를 만들고 손수 제목을 붙인 것이 <빛에 대한 반항>이다. ‘빛에 대한 반항의 연장선에서 어두운 밤에도 자신의 빛으로 창경원(창경궁)에서 벚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과 풍경을 밝히고, 그것을 또 하나의 사진 시리즈 <창경원 밤벚꽃놀이> 속에 안착시켰다. 아직 발표된 바 없으니, 1983년 폐지된 창경원 밤벚꽃놀이가 사진가의 시리즈 작업으로 남겨진 유일한 경우라 추정된다.

지난 2020<뉴욕 1988~1994>에 이은 류가헌의 두 번째 최광호 빈티지 사진전. 용케도 반세기를 건너온 1978년의 빈티지 <빛에 대한 반항>이 전시1관에서 선별 전시되고, 1986년 일본 니콘살롱에서 전시되었던 30점 중 26점의 빈티지 <한 컷 반>이 전시2관에서 선보여진다.

최광호의 사진책을 중심으로 그의 작업 세계를 톺아보는 작가와의 만남223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사진을 넘어 다른 세계로

최광호

일본의 시마반도(志摩半島)와 아쓰미반도(渥美半島) 사이 이세만 입구에는 카미시마(神島 신이 사는 섬)가 있다. 신들이 사는 섬이란 어떤 섬일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살까, 완전한 신의 섬에 불완전한 인간이 살면서 신에게 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다가가 보기로 했다.

사진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신과 신의 세계는 완전한 상태로서 온전한 한 컷으로 표현하고 그에 비해 인간은 불완전하고 모순덩어리니까 반 컷으로 설정했다. 진실은 진실로서 한 컷이라면 거짓은 반 컷이라 생각했다. 하늘이 신의 영역으로서 한 컷이라면 조그만 달은 반 컷 안에 담겼다. 바다가 한 컷이라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의 눈은 반 컷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더 엉뚱한 것들을 연결시켜 보았다. 사람이 한 컷이라면 사람이 바라보는 허공은 사람이 보는 방향과 크기를 가늠해 반 컷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을 한 컷과 반 컷으로 연결시키며 사진 장면의 연결성과 컷의 관계를 생각했다. 목발을 짚고 걸어오는 어른과 그 옆의 아이를 한 컷에 담고는 두 번째 반 컷은 어른이 목발을 짚고 오는 모습만 담아 보았다. 앵글과 프레임의 변화로 한 컷 반 사진은 그렇게 분리되면서도 또 연결되었다. 파도가 바다에서 출렁이는 것을 연결시켜 찍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들을 그 변화에 따라 한 컷 혹은 반 컷에 담으면서 과연 상대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사진적 진실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나는 사진을 왜 이렇게 분리하고 연결 지으며 사진적 진실이나 본질을 발견하려고 발버둥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일본에서 사진을 시작할 즈음 나는 일본사람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삶을 기록하며 체험하던 중 한국사람과 일본사람들 사이에는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미시마에도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었다. 불안하게 살며 이유 없이 차별받는 부조리한 일본사회를 한 컷 반이라는 사진 시리즈로 엮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한 컷이라면 그 속에 살고 있는 힘없는 동포들은 반 컷처럼 느껴졌다. 서로 다른 사진들이 한 컷과 반 컷으로 연결되면서 우연하고 묘한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한 컷의 완전함과 반 컷의 불완전함이 어느덧 내 사진 세계에서 새로운 사진적 표현 방법으로 구축되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면 필름도 하나의 인생이라 생각한다. 필름의 시작과 끝은 마치 인간사와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필름의 시작과 끝을 인생에 비유해 한 컷 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 컷 반처럼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인간사에서 필름 한 롤은 매번 나에게 다른 인생을 담아 주었다. 스승이신 이노우에 세에류 선생님과 여름 세미나 캠프 여행을 갔던 카미시마는 소설가 미시마 유끼오 소설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섬이었다. 한 컷 반 사진은 카미시마에 가서 재일동포들을 만나면서 시작된 내 사진 인생의 새로운 시도였다. 또한 일본유학은 나를 사진과 하나로 묶어주었다. 사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면서부터 사진과 내 삶은 하나로 밀착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단 한 컷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상이함과 어긋남, 모순과 불완전함 등을 지켜보면서 만들게 된 새로운 사진적 표현으로서의 한 컷 반 사진이다. 나는 기존의 틀에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생각과 도전을 한다. 이제는 먼 시간을 지나와 전시를 계기로 사진을 다시 보며 아직도 사진으로 잘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진실을 갈망하던 그때처럼 한 컷 반 사진을 찍을 때의 그 열정으로 나는 변함없이 오늘도 사진으로 살고 사진으로 꿈꾼다. 내 인생은 필름 한 롤에 지나지 않겠지만 오늘도 한 컷 반만큼의 새로운 성장을 기대하며 힘차게 걸어간다. 사진은 걷는 자들이 꾸는 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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