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숙 개인전, ‘Eidos 존재의 본질
신희숙 개인전, ‘Eidos 존재의 본질
  • 곽일록 기자
  • 승인 2024.03.05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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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소 : 무늬와공간 갤러리
전시일시 : 2024. 03. 07 (목) - 2024. 3. 30. (토) (공휴일 휴무)
관람시간 : 10:00 - 18:00, (공휴일 휴무) ▪ 입 장 료 : 무 료, ▪ 전시장르 : 사진

EIDOS (존재의 본질)                                                                       

  신 희 숙

사진의 시작은 바라봄이다.

사진가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고, 우연히 마주친 사물을 바라보면서 사진은 시작된다.  본다는 것은 사물의 형상을 보는 것이며, 우리는 사물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사물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 용어인 에이도스(eidos)는 보다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이데인(idein) 에서 파생된 말로 사물에 내재된 본질을 의미한다. 한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은 다른 사물과 구별해 주는 사물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이것이 무엇인가를 규정하게 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형상의 이면에는 사물 고유의 본질이 내재되어 있다. 본질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를 떠받치고 있으면서, 존재가 시간 속에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본질은 존재 뒤에 숨어야 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와 그것으로 돌아가는 사물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

 존재의 본질은 사라짐에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

 

 

 

 

 

 

 

 

 

 

 

 

 

 

 

 

 

 

 

 

 

 

 

 

 

 

 

 

 

 

 

 

 

 

 

 

 

 

하이데거식 표현으로 우리는 시간 속에 우연히 있다가 사라지는 미완의 존재이며, 우리는 소멸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적 존재인 것이다. 시간의 지평이 곧 존재의 지평이다.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크로노스적 시간 속에 있지만 인간만이 죽음을 의식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유일한 존재이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을 죽음으로 규정한다.

사진은 한 순간을 정지시켜 사진 속에 가두어 두고 단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현상으로써의 죽음을 보게 하니, 사진에는 본질적으로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사진은 다른 시각예술과 달리 대상의 재현을 통해 그것이 거기 있었음을 증명하고, 동시에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존재를 인식시킨다. 사진 속의 사물들은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니, 존재는 부재를 통해 드러나고 부재는 존재를 강하게 인식시킨다. 결국 사진의 힘은 존재와 부재의 증명에서 나온다.

<EIDOS> 사진작업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것임을 얼음을 통해 사유해 본 작업이다.

평범한 사물에서 평범하지 않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사진가의 작업이듯, 겨울 호숫가에서 만난 얼음의 형상은 머지않아 녹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사라질 아니 이미 사라진 존재의 허무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게 하였다.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는 생명체의 숙명처럼 우리는 모두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지만, 분명 존재했고 많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이미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 한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가는 인생의 시간표에 흔적을 남기듯이 사진작업을 남긴다.

 

■  신희숙의 물과 얼음, 그 존재와 순환                                                                                                                                    임창준

20대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시작하였던 신희숙 작가는 2001년  ’심원으로..’<코닥포토살롱> 개인전을 통해 등단하였다.  텅스텐 필름으로 겨울 풍경사진을 촬영한 통해 데뷔하였다. 현실의 삶이 고되고 힘들수록 도망가고 싶은 유토피아. 아득히 먼 그 곳, 心源을 찾아 거친 산야를 헤매는 구도자의 마음을 황량한 겨울 호숫가를 배경으로 촬영한 심상 사진들이다.  텅스텐 필름을 사용함으로써 겨울의 쓸쓸함과 처량함, 신비로움을 푸른 끼의 색감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평소 마이클 케냐와 민병헌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보며 사진의 꿈을 키워온 작가라서 어딘가 비슷한 상을 추구하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한 고 한정식 선생님의 고요 시리즈처럼 사진 분위기가 구도적인 것은 같은 국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로서의 맥이 통한 게 아닌가 싶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듯 사진은 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사진이 많아지고, 무엇보다 찍는 행위의 즐거움이 사진을 계속하게 만들고… 만 레이가 “그릴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그릴 수 없는 것은 사진을 한다”라고 하였듯이,  국문학을 전공한 사진작가 신희숙에게는 시나 사진이나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이기도 한 신희숙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노자의 “上善若水”이다. 노자의 철학적 시선이 머물렀던 물을 바라보며 그녀의 사유도 시작되었고, 물에 대한 관념을 확장시키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도 확장되었다.  사진을 찍기 전 나는, 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물의 본질에 더 접근해 작업한 결과는 2018년  토포하우스에서 ‘사유의물 ; Insight’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모든 예술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듯, 신희숙에게도 사진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내면의 응시이다.

“사진의 노에마가 작가 자신이듯

사진의 시작은 ‘나로부터’ 이며

사진의 시선은 나를 향한 시선이고

사진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존재의 본질, 존재의 근원, 존재의 의미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존재 시리즈’ 작업으로  연잎의 물방울을 촬영한 <존재(sein)>에 이어,  결국 2020년  강화 고인돌을 촬영한 사진집 <침묵의 시간(The Time of Silence)>을 출간하였다.

침묵의 시간 속에서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서 죽음의 비밀을 간직한채 말 없이 서있는 고인돌을 바라보며 저 죽음 끝에 나의 죽음도 있음을 사유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고인돌과 사진이 둘 다 지난 시간과 죽음을 표상하는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진이 존재를 증명하면서 시간 속으로 사라진 존재의 부재를 보여주듯, 고인돌도 수천년 전에 이 땅위에서 살다 간 존재를 증명하는 ‘존재의 그림자’이자 ‘사라진 존재의 초상’이다.

그리고 12년을 동고동락하며 같이 살았던 냥이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하게 된다. 냥이의 죽음을  계기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사유에 계속 빠져들며가 생명의 기원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EIDOS> 사진작업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겨울 텅 빈 호수에서 작가는 생명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것이 죽어있는 것 같은 얼음 속에서 다양한 형상을 관찰하고, 그 형상들에게서 우주의 근원과 다양한 생명의 기원들을 추구한 것이 <EIDOS> 작업이다.

신희숙 작가는 얼음을 통해 존재의 본질은 사라지는 것임을 사유해 본다. 분명 존재했지만 언젠가 사라져야 하는 존재의 숙명처럼 단단한 고체 얼음은 온도가 올라가면 녹아 그 형체가 사라져 버리니, 사라짐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하였다.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로 원자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순환한다는 물질불변의 성질처럼 생명체의 죽음은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원자들의 결합으로 다른 사물로 재탄생된다.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는 만물의 물질 순환의 성질을 표현하기 위해서 액체상태의 물이 아닌, 고체 형태의 얼음을 소재로 선택하였다. 얼음은 결국 다시 물로 변환하게 된다.

결국 그녀의 작업은 다시 노자의 “무위자연”으로 귀착되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욕심 부리지 말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살다 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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