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자화상 - 정지필 개인전
태양의 자화상 - 정지필 개인전
  • 박미애 취재국장
  • 승인 2017.06.19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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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태양의 자화상(2016)​ - 정지필

기존의 사진재료가 아닌 나뭇잎, 풀잎, 해조류 등 일반 사물을 필름으로 카메라에 넣고 태양을 촬영하는 비은염 사진 작업을 통해 지구상 모든 것들은 빛에 반응하는 광감재이며, 지구의 현상은 태양 빛으로 그려는 하나의 커다란 그림, 즉 사진(photo- 빛,-graphy 드로잉)임을 보인다.

​ 미술과 세상을 '사진'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행위를 통해 기존 사진의 개념을 확장하고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정의의 가능성을 보이고자 한다.

 

 


사진은 크게 ‘은염 사진’과 ‘비은염 사진’으로 나뉜다.

은염 사진은 ‘은’이 빛에 반응하여 검게 변하는 현상을 이용해 상의 음영을 기록하는 사진이고,

비은염 사진은 은이 아닌 다른 물질을 빛에 반응하는 ‘광감재’로 쓰는 사진이다.

사진발명 이후 사진 산업 전체에서 은염사진이 절대적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은염’ 사진, ‘비은염’ 사진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과 프린팅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은염사진이 주가 아니게 되었다.

 

 

 

 

 

 

 

 

 

 

 



단시간에 대형 회화를 그려내는 지인의 작품을 보고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싶어 작가의 작업과정을 생각해보았다.

작가가 그리는 것은 작가의 머리 속에 그려진 이미지일 것이다.

그 이미지는 그전에 살아오면서 본 것들의 조합 또는 변형일 것이다.

작가가 선천적인 맹인이었다면 그 어떤 이미지도 머리 속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의 표현도 많은 시간, 눈에 익혀진 붓질과 재료의 특성에 의한 것이다.

본다는 것은 사물에 반사된 빛에 의한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작가의 작품은 빛에 대한 작가의 반응인 것이다.

작가를 ‘은’을 대신하는 아주 복잡한 단계의 생화학적인 비은염 광감재라고 한다면 그가 그린 작품은 비은염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실 조형예술의 모든 매체는 비은염 사진 또는 약간의 은염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도심 속 고층빌딩 사이 인공적으로 잘 꾸며진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 모든 것은 빛에 의해 그려지는 현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과 풀, 나무는 물론이고,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인류 문명은 태양 빛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생명현상이 빛에 의해 시작 된 이후, 많은 시간 동안 거듭된 진화, 그리고 지식과 기술의 축적으로 인류 문명은 발전해왔다. 이는 절대적으로 태양으로부터의 빛 에너지의 공급에 의해 가능했다. 태양빛 공급이 끊긴다면 순식간에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 마치 지구의 현상들은 태양 빛에 의해 그려지는 그림(Photo 빛 + graphy 드로잉= photography 빛으로 그린 그림) 즉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존의 고정된 사진들과는 달리 ‘정착’되지 않은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의 정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근데 사진은 바랜다. 사진이 발명되고 보급된 지 200년이 지나지 않았다.

천년 만년 지나 보지 않았다. 확실히 수 억년 후까지는 기존의 그 어떤 형식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극미시안적으로 본다면 기존의 모든 사진들도 계속 조금씩 변하고 있을 것이다. ‘정착’은 사진을 정의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 지구의 현상들도 계속 변하기는 하지만 형태가 있는 이 정도면 정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의 현상은 태양으로부터의 빛(photo-)에 의해 그려지는(-graphy) 하나의 커다란 사진이다.

그 피사체는 태양이다.

태양이 빛으로 지구에 그리는 태양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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